<조흔꼿 논개>
낮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南江은 가지 않슴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섯는 矗石樓는 살가튼 光陰을 따라서 다름질침니다
論介여 나에게 우름과 우슴을 同視에 주는 사랑하는 論介여
그대는 朝鮮의 무덤가온대 피였든 조흔꼿의 하나이다 그레서 그 향기는 썩지 안는다
-한용운, <論介의 愛人이 되야서 그의 廟에> 중에서
1
열하루 낮과 밤 내내 눈을 붙이지 못하였습니다. 모두들 왜놈들과 싸우는 동안 저는 저대로 잠과 싸우고 있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그깟 불면을 피 튀기는 전장에 대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요. 다만 자꾸만 고개를 드는 불안과 어두운 운명에 쉽게 자리를 내주기 싫었던 탓이지요. 제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주막집 할멈의 크고 작은 투정을 받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것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답니다. 자기 아들도 전장에 나간 데다가 이웃의 아낙들까지 알량한 힘을 보탠답시고 동원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제가 장수의 처라고 하지만 관비 출신의 측실이고 보면, 내놓고 말하지 못해도 할멈에게는 아니꼽게 보일 수도 있지요.
그러다 마침내 영감께서 여러 장수와 더불어 강물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접했지요. 어린년(乻仁蓮)이는 단박에 통곡을 해대었지만 저까지 그럴 수는 없었답니다. 생각해보면,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나서 지금껏 종으로 살아오면서 저를 낳아준 어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도 모르는 어린년이가 왜 그다지도 서럽게 울었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주막집 할멈이 전장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것에 동화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설마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것을 원통해하는 것은 아니었겠지요. 어린년이가 나라로부터 받은 건 종이라는 신분밖에 없을 테니까요.
“마님은 원통하고 서럽지도 않으시우?”
할멈이 혀를 찼지만, 이상하게 주변이 조용해지면서 고즈넉해지는 느낌이었어요. 크게 서럽지도 않았는데 또 전혀 그렇지 않은 것만도 아니었답니다. 귀가 왱 하며 울리고 머리속이 한가운데로 몰리는 것을 인식하며 눈을 감았어요. 잠시 후 영감의 찌푸린 얼굴이 보이면서 서서히 배경이 드러나더군요. 남강의 물빛은 어찌 그리 푸르던지요. 짙푸른 물속에서 출렁이고 있는 영감을 보면서 제가 지어 보인 미소를 혹시 보셨는지요. 영감은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저를 성 밖으로 내쳐 멀찌감치 떨어진 주막에 머물게 하셨던 것이겠지요.
“마님, 괜찮으시우?”
눈을 떴을 때 어린년이와 할멈이 입을 맞추어 묻더군요.
“염려 말게. 오래 눈을 붙이지 못해 사로잠(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여 자는 듯 마는 듯하게 자는 잠)에 든 것 뿐이니.”
소식을 전해준 늙은 보부상은 참상을 전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요. 젊은 보부상들은 싸움에 뛰어들고 늙은 축들은 자기들끼리 연락하여 군량미를 대고 긴요한 연락을 전하기도 했답니다.
“어이구, 말도 마이소. 에나로,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다 쿤께요. 군사들허고 싸움에 가담헌 양민들허고 구분없이 한데 뒤섞여 널부러져 있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볼 수가 없습디다. 피가 모여 내를 이루고 사방천지에 몸뚱이를 찾지 못한 팔 다리가 널렸지요. 게다가 이 쳐쥑일 놈들이 죽은 이들의 코와 귀를 마구 잘라 전리품 삼는다니, 에나 천인공로할 일 아입니꺼. 이놈들은 산 사람들 몽땅 창고에 가두어 불을 놓아버리니 그 악행이 하늘을 가리고, 죽은 이 한 번 더 찌르고 베어 죽이니 그 지랄발광에 저승사자마저 몸을 떨고 눈을 돌릴 지겡이라오. 그렇게나 맑고 푸르던 남강물이 검붉게 벤해뿟으니 예전의 물빛을 어찌 살릴지, 난망한 일입지요.”
늙은 보부상은 늙은 손으로 늙은 눈물을 훔치더이다.
“어린년아, 함부로 나다니지 말고 몸조심하거라. 풍신수길인지 도요토미 히데요신지 허는 왜놈 수괴가 작년 진주성 싸움서 대패헌 복수를 한답시고 사람 형색은 물론이고 개미 새끼 하나도 남기지 말고 도륙하라꼬 엄명을 내맀단다. 그래논께 늙은이고 애고 할 꺼 없이 칼부터 휘두르고, 치마 입은 사람은 얼라까지도 겁탈허고 여지없이 벤단다. 가락지며 비녀는 물론이고 항아리는 청자, 백자, 심지어 요강도 가리지 않고 빼앗아 간다지. 조심에 또 조심허고 마님 잘 모시거라.”
할멈은 몸을 떨다가 눈을 모로 세우고 보부상에게 따져 물었답니다.
“근데, 그런 불지옥에서 그 짝은 요로코 펄펄 살아댕기는 비겔이 뭐시요이? 혹시…….”
보부상은 다시 늙은 한숨을 토해내더이다.
“휘유……, 나도 목이 달아날 뻔했지. 그런데 이 놈들이 칠월 칠석날 떠들썩하게 전승연을 연다지 뭔가. 그래서 노리개로 삼을 기생들허고 술과 음식을 준비헐 자들 몇몇만 목을 그대로 달아두었다네. 나참, 이런 마당에 야차거튼 놈들 먹고 마실 그릇과 식재료를 구해다 바쳐야 한다니, 내 운명도 기구허지.”
저는 지체없이 보부상에게 부탁하였지요. 왜놈들의 전승연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 되도록이면 우두머리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김해부사 이종인이 최후에 왜놈 둘을 양팔에 끼고 남강에 뛰어든 것처럼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지요.
“아이쿠 마님,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요. 큰일납니다요.”
“자네까지 연루될까 겁나서 그런 겐가?”
“아니, 제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지아비를 잃고 돌아갈 집도, 저를 반겨줄 친정집이나 어머니마저 없으니 벌써 죽은 목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사람마다 한 번의 죽음은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이 태산보다 중할 때가 있고 홍모보다 가벼울 때도 있다. 죽음을 쓰는 데 그 의의가 다를 뿐이다’ 사마천의 말까지 들먹였지요. 급기야 늙은 보부상과 할멈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린년이만 새롭게 몸을 떨어대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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