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전승연이 열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죽엽이 두고간 비단 치마저고리를 입고 화장까지 곱게 했답니다. 서방님 앞에서도 한 번 해보지 않았던 치장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제가 저 놈들에게 교태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지요. 잘못된 저들의 오만과 수컷의 자존심을 꺾어야 한다는 명분이 무한한 용기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더구나 간밤에 어둠 속에서 느꼈던 가락지의 힘이 날이 밝자 수백, 수천, 수만 배의 힘으로 살아났답니다. 할멈의 말대로 ‘가난하고 무지한 할망구들의 손에서 때가 끼고 긁히면서 그들과 함께 망가져온 가락지’였지만, 사실은 옥이나 금, 은의 본성을 한 번도 잃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것은 아마 남강 저 깊은 물 속에 가라앉더라도 언제나 변하지 않을 본성임을 저는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행수기생에게 가세.”
늙은 보부상을 앞세워 기생 신분으로 진주성에 들어갔습니다. 곧장 국향을 찾아가 말발이 있는 기녀들을 은밀히 모아 달라고 부탁하였지요. 그리고 그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의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입니다. 저는 혼자 호의호식하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생각 자체를 경멸합니다. 지금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제가 행수기생께 부탁해 기적에 오른 것도 다 의를 지키기 위해섭니다. 또 그것을 알기에 절 기적에 올려주신 것으로 압니다. 예,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열녀문이라도 하사받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를요. 하지만 그것은 누가 만든 원칙인가요? 왜 다른 방법은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요? 그들은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을까요? 부디 제가 나쁜 원칙과 나쁜 생각에 맞서 의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탁하고, 서방님이 남기신 시를 들려주었지요. ‘저 강물 흘러 마르지 않는 한, 우리의 혼도 결코 죽지 않으리라’. 서방님의 시를 알고 있는 듯,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제가 여기, 위암에 서게 되었습니다. 강물은 도도하고 붉은 노을은 장엄합니다. 벌써부터 촉석루에서는 풍악이 울려퍼지고 저들의 웃음소리 높아만 가네요. 행수기생을 비롯한 기녀들이 쉬지 않고 술잔을 채웁니다.
마치 세상을 다 차지한 듯한 놈들의 광태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흉물스레 춤을 추는 놈, 기녀의 단속곳까지 벗기려 뒤쫓아가며 괴성을 지르는 놈, 관비 하나 세워놓고 칼을 던져 맞추기 내기하는 놈까지, 팔열지옥과 팔한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미리 약조한대로 촉석루 아래 어두운 구석에 있던 가기(歌妓, 소리를 잘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던 기생)가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팔을 들어올리며 죽엽에게 배운 대로 춤을 춥니다. 아마 화관을 쓰고 원삼으로 정장을 한 다른 기녀들과 달리 저는 소복을 입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띌 것입니다.
아아, 비장한 춤이지만 출수록 흥이 나는 춤을 춥니다. 그토록 손과 발이 맞지 않아 죽엽의 애간장을 태웠던 춤이 어찌 이리도 자연스레 추어지는지요.
그래요, 보이네요. 강 이 편과 저 편 댓잎에 적힌 수많은 관군의 이름들이 제 춤에 따라 흔들리네요. 흔들리며 춤을 추네요. 오시어요, 강 아래 서방님. 오시어서 저와 더덩실 춤 추다가 강물에 뛰어들 제 도와주시어요. 못된 삼촌 같은 왜놈,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삶을 흔들고 꺾는 자들, 다시는 아녀자의 몸 빌어 생겨나지 않게 벌하는 일, 도와주시어요. 이 일을 해내지 못하는 한 제 영혼도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저기, 거구의 왜장 하나가 비척대며 오네요. 금방 끝날 거예요, 모두들 준비해 주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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