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날아갈세라 꺼질세라 어머니의 사랑
아무리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아버지가 그것을 반대한다고 해도 그렇지, 자식 노릇을 하지 않겠다니, 부모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상급 학교 진학을 허락해 주지 않으면 아예 식음을 전폐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어째 저런 놈이 다 있는고, 허허 참.”
아버지는 혀를 차면서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망연자실했다. 놀란 것으로 치면 아버지 이상으로 어머니도 소스라치게 놀라 펄쩍 뛰었다.
“아이고 상훈아, 니 와 이라노? 이 문 좀 열어봐라, 상훈아.”
어머니는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종갓집 며느리로 후손을 낳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남편 대에도 후손이 없어 남편이 작은집에서 양자로 들어온 데다가, 자신들마저 아이를 낳지 못해 상훈을 작은집에서 양자로 들인 터여서 늘 불편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았다.
요즘 같으면 병원에 가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밝혀내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강구하겠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여자의 탓이 되기 일쑤였다. 그것이 종갓집 며느리의 당연한 책무로 알고 평생 순종해온 것이었다.
아들 편이 되어 남편을 설득하다
천 근 무거운 굴레 벗으려는
여자의 피맺힌 부르짖음이
이 나라 고을 고을을 흔들어……
아아 피어 아름다워야 할 젊음이
곰팡 냄새 매캐한 골방 속에서
빛도 향기도 없이 시든단 말요!
-시 <여자에게 주는 노래> 중 일부
청춘이니 왜 싸둔 사랑이 없으랴만
예법 아래 파뿌리같이 늙어가야 하는 사람들
이 마을엔 열여덟 명의 며누리들이
「해방」이란 말도 모르고 시들어간다
-시 <며누리> 중 일부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젖먹이 때부터 품안에 기른 상훈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세상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사랑을 상훈에게 쏟아부었다.
양어머니라서 아이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친자식 이상으로 정성껏 보살피고 취공비집공휴(吹恐飛執恐虧), 말 그대로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사랑에 사랑을 더했다.
“아이구 여보, 이라다가 귀한 자석 굶가 죽이겠소. 다른 것도 아니고 지가 하고 싶은 공부 하게 해달라쿠는 긴데, 제발 인자 하게 해주입시더, 예?”
어머니는 총명한 자식을 금방이라도 잃게 될까봐 필사적으로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아이고 야야, 새애기야. 니도 가마이 자루맨키로 가마이 있지 말고 너그 남펜을 달래보든가 너그 시아부지를 돌려 세울라고 매달리든가 해봐야 안 되것나. 이라다가 진짜 죄없는 아 잡긋다.”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이성부 시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중 일부
상훈도 이미 알고 있었다. “누더기 속에서 버리밥을 너흘어/제비새끼처럼 입맞추어 먹여 기른” 어머니의 정, 상훈이 힘들고 괴로워하면 “눈보라 얼어붙은 땅 위에서/몇 날 몇 밤을 안고”상훈을 위해 울며 지새울 것이라는 것도, 상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낡은 행주치마에/ 눈물도 아롱진 채”로 자식의 “목숨을 지키려고”(시 <어머니에게 드리는 노래>) 달려가리라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상훈은 그것을 이용했다. 자신이 단식농성을 벌이면, 속깊은 사랑이 없지는 않으나 일일이 잔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는 당황하면서도 부러 태연한 척 할 터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퍼올려도 퍼올려도 끝없는 샘물처럼/(중략)/그 짜고도 뜨거운 눈물이/눈시울에 고여서 부질없이 넘어날세라/어머니는 소스라쳐 머리를 흔드시고”(시 <어머니에 대한 생각>) 아버지에게 매달릴 터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설득할 터였다.
상훈은 그런 어머니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상급학교 진학,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상훈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훈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마침내 “상훈의 뜻을 따르게 된다. 아내가 산역으로 죽기 얼마 전인 18세 겨울의 일이었다.”(정영진, <변신의 일생과 갈등의 시>, 문학사상 198호, 1989)
어머니 생각하면 세월이 멈춰섭니다
이 일을 계기로 상훈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더 한층 깊어졌다. 상훈이 자신을 혁명가로 자처하며 수많은 시를 썼지만, 자주 어머니에 대한 시를 썼던 것도 이런 일들에 기인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물레질 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부엌문 여닫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을앞 오솔길에 매화꽃이 가득 핍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세월이 그 자리에 멈춰섭니다
-시 <어머니에 대한 생각>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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