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새와 매미와 새끼 비둘기
모두들 아는 장자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읽을 때면 속이 ‘뻥’ 뚫리는 듯한 후련함 때문이다. 다만, 장자를 제대로 공부한 것이 아니어서 다소 격이 떨어지는 것은 독자들이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었는데 이름은 곤(額)이다. 그 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었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몸집이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 파도를 3천 리나 일으키고 9만 리 장천에 올라 6월의 큰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붕새는 북명(北冥)에서 날아올라 남명(南冥)에 깃든다고 했다. 조선시대 경상우도의 거두 조식 선생이 자신의 호로 삼았던 바로 그 ‘남명’ 말이다. 어쨌든 붕새가 날아오르는 장관을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목격했다.
“저런, 병신. 뭐하러 구만 리나 날아올라?”
매미의 빈정거림에 새끼 비둘기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힘들게시리. 하기야 큰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거 보니까 지 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모양이여.”
둘은 느릅나무 가지에 앉아 찧고 까불었다.
“고마 우리맨키로 살믄 되지, 지가 뭐 그리 잘났다고 지랄이여, 지랄이.”
매미와 비둘기는 그냥 느릅나무 근처를 뱅뱅 돌다가 ‘행복하게’ 죽었다. 당연히 붕새가 왜 날아올랐는지, 왜 남명으로 가 거기 깃들었는지는 모른 채.
자, 이 정도면 권환 시인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왜 장자로 운을 뗐는지 알아 들었겠지? 장자 이바구에 장자가 등장 안 하니 모르겠다고? 좋다, 이왕 거기서 운을 뗀 만큼 장자 할배 등장하는 이야기 하나 더 하자.
혜자(惠子)는 평소 장자를 그리 대단치 않게 생각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기는 한데 실생활에서는 별로 쓸 데가 없다는 거였다. 뭐, 생각해보면 혜자의 생각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솔직히 공자 왈 맹자 왈 맞는 말인 줄 초․중․고등학교 대충대충 다닌 사람이라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거 지키고 사는 사람 몇이나 되나. 오히려 그런 거 안 지키고 약삭빠르게 사는 사람이 더 잘 살지 않던가, 겉으로 보기에는. 어찌 됐든, 혜자는 장자의 사상을 비웃어줄 적당한 비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바가지’였다. 어디서 흥부 놀부의 박씨 이야기를 들었는지, 읽었는지 확인은 어렵다.
“장자 선생, 인자부터 내가 하는 이바구 잘 들어보소. 나허고 위왕(魏王)허고 억수로 친한 거는 소문 들어 알고 있지요? 그 위왕이 어디서 흥부가 박씨를 심어 큰 부자가 됐다는 소문을 듣고 나한테 박씨를 선물해 주더라꼬요. 머, 내가 큰 욕심이 있는 거는 아니지만서도 선물을 주는 걸 우짜것노, 심갔지요. 이기 잘 커더마는 나중에는 진짜 쌀 닷 섬은 족히 들어갈 만큼 커뿌맀는기라. 혹시나 해서 쪼개본께 역시나 안에 금은보화 이런 거는 없고 그냥 맹탕 박인기라. 근데 너무 커가꼬 물을 담아도 그거 들지를 못하것꼬, 쪼개서 바가지로 쓸라캐도 납작하고 얕아서 아무짝에도 몬쓰것는기라. 흥부가 받은 박씨허고는 종자부터가 달랐던게비라. 크기는 열라 큰데 쓸디가 없어서 뿌사 내삐맀어요.”
혜자가 자신에 대해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장자도 잘 알고 있었다. 장자의 사상은 크기만 했지 사실 쓸모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장자도 언제 어디서 혜자가 자신을 공격해 오더라도 반격할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당신, 뭘 잘 모리는갑네. 큰 거는 큰 거대로 작은 거는 작은 것대로 다 씰 데가 있는 기라. 나도 비유해가꼬 이바구 해주께. 옛날 송나라에 빨래방을 운영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대대로 집안에 손이 트지 않게 해주는 약방문이 전해 내려온 기라요. 그러니 겨울에 빨래를 해도 손이 안 트니까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고, 다른 빨래방보다 돈을 더 벌 수 있었지예. 근데 어느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우찌우찌 그 사실을 알게 된기라. 메추리알만한, 아니 달걀만한 백금을 내놓고 약방문을 팔라고 제안을 했어예. 그래,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비상 가족회의를 열고 상의를 했답니더. ‘우리 집이 대를 물려 빨래질이나 하면서 돈 몇 푼 벌다가 하루 아침에 백금을 벌게 되었으니 팔기로 하자.’ 이래서 약방문을 팔아삐맀답니다. 나그네는 약방문을 입수하자마자 오왕(吳王)을 찾아가 그것을 바칬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월나라가 침략을 해온께 오왕은 그를 장군으로 임명한 기라요. 겨울 빙판 위에서 월군(越軍)과 수전을 벌였는데 결국 크게 이깄답니더. 월군은 손발이 터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지만 오군은 그 약을 발라 아무렇지 않게 싸울 수가 있었던 기지요. 그 공으로 그는 오나라 영주가 됐다 캅니다.”
장자는 혜자의 눈을 바로 보며 쐐기를 박듯 말을 이었다.
“인자 함 생각해 보소. 손을 안 트게 하는 건 어느 쪽이나 같지요? 그러나 한 사람은 그것으로 영주가 되었고, 한 사람은 겨우 빨래질이나 면했응께, 이거는 쓰는 방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 아니겠능교. 생각 좀 해보랑께요. 그러케나 커다란 박이 있으모, 어떻게 쓸 수 있을지를 더 생각해봤으야 하는거 아니냐 이 말이지요. 문제는 당신 머리지 커다란 박이 아니었던 기라.”
혜자는 싱겁게 뒤통수 벅벅 긁으며 물러갔다는 게 이 이야기의 끝이다.
‘권환’을 어찌 할 것인가?
여기, 우리 앞에 쌀 닷 섬들이 박이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그 어떤 박보다 크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보기 드물게 큰 박임에는 틀림없다. 아니, 손 안 트게 하는 약이라고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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