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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소고기 못 먹어서 환장하지 않았다

국민을 상대로 한 '마루타' 실험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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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고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숨은 걸작'이 아니라서 굳이 '찾기'까지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생일 때나 명절 때 나오는 '고깃국'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예전보다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소고기국'은 여전히 어쩌다 한 번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값싼 소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먹고 죽을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전제만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대통령은 그런 전제를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위험성 때문에 수입하지 않는 걸 우리가 싸게 사왔으니까' 마음껏 먹으라는 것이다. 미국산 미친 소에 관해서는 수많은 관련 자료들이 있으니 더 언급하지 않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소고기 못 먹어서 환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이 든 사과인 줄 알았으면 과연 백설공주가 그것을 먹었겠는가. 자국민들조차 꺼려하는 것을 굳이 돈 주고 사와서 먹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싼 값에 많이 먹어야 맛인가. 1년에 한두 번이지만 우리에게는 생일이나 명절 때 기쁘게 먹었던 적은 양의 '고깃국'이 뇌리에 더 아름답게 남아 있다. 그 아름다운 기억을 훼손할 권리가 대통령에게는 없다.

리프킨은 이를 '차가운 악'이라고 설명한다. 제도적으로 인정되고 합법화된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발생되는 범죄를 말한다. 소고기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남아메리카의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지하수를 유실시키며, 소를 먹이기 위해 재배되는 사료식물 재배에 의한 토양의 유실, 그에 따라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 사막화되는 유실지 등.

게다가 소의 체중을 불리기 위한 불법행위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다소 길지만 인용해보자. "성장 촉진 호르몬과 사료 첨가제 같은 약제들을 소에게 투약한다. 작은 정제 형태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귀에 투약되는데, 이 호르몬은 서서히 혈액 속에 스며들어 호르몬 수치를 2~5배까지 끌어올린다. 에스트라디올(발정 호르몬의 일종),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프로게스테론(황체 호르몬)도 투약된다. 이 호르몬들은 세포를 자극하여 추가 단백질을 합성시키고 근육과 지방 조직을 좀더 빠르게 성장시킨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체중을 5~20%, 사료 효율성을 5~12%, 지방이 적은 육질의 발달을 15~25% 가량 끌어올린다. 현재 미국의 모든 비육장에서는 95% 이상의 소들에게 성장 촉진 호르몬을 투약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환경도 죽이고, 광우병으로 인간들까지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겠다는 것은, 개인적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거칠게 말해 국민을 상대로 한 '마루타' 정책이요, 대운하 건설을 능가하는 악질적 범죄에 다름 아니다.

/하아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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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 지음 | 시공사 펴냄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 의식의 역사에서 인류학적 전환을 의미한다. 우리는 육식 문화를 넘어서야만 인류를 위한 새로운 과제를 정할 수 있다. 이 책은 수천 년에 걸쳐 인류와 소 사이에 공고하게 다져진 특별한 관계를 다루고있다. 라스코 동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최초의 고고학적 기록부터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했던 치코 멘데스 암살에 이르기까지 역사 전반에 걸쳐 인간과 소의 관계를 검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