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하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면 이렇게 뿌듯한데...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20. 15:05

<희망을 새긴 판화가 오윤> 성완경 지음 l 나무숲 

 

어우러져 추는 춤사위에 실린 희망

이오덕 선생님의 <일하는 아이들>이 2002년 개정판으로 나왔을 때 표지에 있는 판화를 보면서 1970년대 아이들의 삶을 표현하기에 딱 맞는 그림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골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가족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아이들의 시만큼 표지의 판화도 순박하고 강직한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있는 모습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판화를 만든 사람이 오윤이라는 것은 <희망을 새긴 판화가 오윤>을 읽고 나서였다. 소설가 오영수 선생의 아들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오윤은 1946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6년 마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해방과 전쟁 속에서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오윤은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게 되지만 서양 현대미술에 관심을 두지 못했던 오윤은 독학의 길을 걷게 된다. 오윤은 판화에서 예술혼을 발휘하였다. 판화의 굵은 선에서 느껴지는 강직함, 강렬함, 순박함, 대담함, 이런 점들이 오윤을 사로잡지 않았을까.

<희망을 새긴 판화가 오윤>에는 오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의 고민이 무엇이며, 그 결과 작품에서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가를 소개하고 있다. 오윤의 삶과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작가를 좀 더 가까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녘땅 뱃노래>라는 작품은 북 장단과 징소리에 맞춰 힘차게 노를 저어가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넘실대는 파도 위에 배를 타고 춤을 추는 사람과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이 마치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렇게 더덩실 춤을 추며 헤쳐나갈 것이라는 각오를 보여주는 듯하다.

오윤은 술을 좋아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전남 진도로 요양을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진도의 판소리와 육자배기, 북춤을 배우며 굿판을 찾아다녔다. <천지 굿>, <북춤>, <무녀> 등의 작품은 오윤의 관심이 어디로 기울었는가를 보여준다. 오윤은 굿판에서 어떤 신명을 느꼈던 것일까? 오윤은 1985년 <통일 대원도>를 남겼다.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축제를 벌이는데,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도 사람들과 어울려 더덩실 춤을 춘다. 오윤은 신명으로 통일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게 아닐까.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어깨춤을 추는 사람들이 오윤에게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의 판화에 나오는 강직하고 순박한 사람들처럼 그 또한 마흔한 살의 생애를 그렇게 보냈다.

민중 집회에서 걸개그림으로 보던 판화의 선동성만이 아니라 순박한 사람들의 신명이 실린 춤사위를 볼 수 있는 오윤의 판화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바란다. (요즘 거의 매일이다시피 열리고 있는 촛불문화제는 그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한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