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무

"내 얼굴은 코뿔소 엉덩이에 핀 해바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20. 17:30

잘난척쟁이 살바도르 달리가 그리 밉지 않은 이유
《지식인은 돼지다, 고로 나는 최상의 돼지다》-알랭 보스케, 작가정신

 

하아무(소설가)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그런데 경남 남해에서 촬영됐던 드라마 <환상의 커플>이 방영될 때, 난 아주 재미있게 드라마를 보았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의 중심에는 탤런트 한예슬이 연기한 조안나와 나상실이 있었다. 극중 장철수가 말한 바대로 ‘어이상실, 개념상실, 인격상실’의, 정말이지 밥맛 뚝뚝 떨어지게 하는 타입의 인물이다. 오만불손한데다가 도도하고 정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악녀다.

그런데 어찌된 게, 옆에 있으면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고 쥐어박고 싶은 성격의 그녀가 전혀 밉지 않다. 오히려 아무 기억은커녕 쥐뿔도 없지만 당당하기만 한 나상실이 사랑스럽기조차 하다.

책 이야기로 넘어와서, 희한하면서도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관련된 책이다. 프랑스 평론가 보스케가 달리와 대담한 내용을 엮은 것. 그래서 ‘달리에게 던지는 100가지 질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달리는 워낙 유명한 화가고, 그에 대한 책도 이미 많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달리를 예찬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 아니라, 달리의 입으로 직접 말한 내용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담이 이루어진 것은 1960년대 중반. 1930년대 말에 미국으로 건너간 달리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시나 희곡을 쓰고, 기이한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영화나 발레의 무대장치를 제작하고, 엉뚱하게 영생을 위한 과학에 몰두”하기도 했다. 화가로서의 달리를 간절히 보고 싶어 했던 보스케는 “작품들을 핥던 시절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그러나 달리는 그림에 별로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천재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데 굳이 그림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투다. 그리고 시종일관 잘난 척을 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인은 돼지와 같은데 그 중에서도 자신은 최고의 돼지라는 둥, 자신의 그림 한 점이 피카소의 그림 모두를 합친 것보다 뛰어나다는 둥, 자신이 ‘제국주의적’ 천재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둥, 자신이 미국에 사는 이유가 “수표 더미가 설사처럼” 자기에게 쏟아지기 때문이라는 둥,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자신이어야 한다는 둥, 정말 잘난 척의 끝이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따로 없다. 분야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나상실(조안나)와 막상막하다. 그런데 그의 답변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의 자화자찬이 솔직함과 버무려져 밉지 않게 다가온다. 나상실의 경우와 비슷하게 말이다. 당당함과 함께 어린애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와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그의 독설과 조롱, 해학, 그리고 천재성에 은근히 동조하게 된다. 생각해보라. 만일 자신의 동상을 세워준다면, “거대한 코뿔소 모습에 엉덩이에는 해바라기를 조각해주길 원한다”니. 게다가 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이 지상에서 제대로 맛볼 수 없었던 ‘음란’을 마음껏 탐닉해 보겠”단다.

그의 작품보다 그 자신이 더 작품 같았던 달리. 그의 개성 넘치는 답변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환상의 커플>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또한 창의적이다. 잘난 척도 이 정도면 애교다. 잘난 척하지만 세상을 창의적으로 변화시키고, 재미있지 않은가.

* PS-<환상의 커플>이 방영될 무렵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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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지음 | 이마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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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지음 | 마로니에북스 펴냄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세계를 망라한 포트폴리오 북. 살바도르 달리는 비이성과 잠재의식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며,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을 미적 원리의 단계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자신의 초현실주의적 환영의 환상과 상징을 풀어서 보여준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달리의 과장된 행동과 돈에 대한 탐욕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편집광적 비평방법은 기억과 꿈의 속박에서 지성과 상상력을 해방하는 도구를 초현실주의자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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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네레 지음 | 마로니에북스 펴냄
살바도르 달리의 생애와 작품들을 살펴보는 책. 화가이며, 조각가였고, 작가였으며, 영화 제작자였던 살바도르 달리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기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작품에 적용하여 예민한 감성과 상상력을 무의식과 연관지었다. 이 책에는 악명 높았던 초현실주의자 달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그의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만나볼 수 있다.
지식인은 돼지다 고로 나는 최상의 돼지다 상세보기
알랭 보스케 지음 | 작가정신 펴냄
살바도르 달리와 프랑스의 작가 알랭 보스케의 대담을 엮은 책. 화가라기보다는 어릿광대, 허풍쟁이, 때로는 천재적 철학자로서의 달리의 면모를 보여주며, 정치. 문화. 여자. 예술 등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을 집약하고 있다. 특유의 콧수염과 자신만만하고 솔직한 천재성으로 숫한 화제를 일으켰던 '아트 스타' 달리. 그는 지식인이 돼지라고 주장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자기 과시와, 무엇보다 세상을 솔직하게 말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