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무

사무라이는 이렇게 탄생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21. 00:22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일본 전통, 사무라이 정신
《일본의 무사도》-니토베 이나조, 생각의 나무

몇 년 전부터 이 책이 일본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란다. 그 때문일까. 비슷한 시기에 이 책의 개정판이 우리나라 서점가에 나왔다.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이란 시리즈 중 하나다. ‘무사도를 통해 본 일본 정신의 뿌리와 그 정체성’이란 부제도 붙었다.

저자인 니토베 이나조는 교육자이자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낸 인물로, 5천 엔 권 지폐에 그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이 책은 그가 미국 유학 중이던 1899년 미국인들에게 일본을 알릴 목적에서 영어로 쓴 것이다. 108년 전에 나온 책에 다시 일본인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직접적으로는 <킬빌>이나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헐리우드 영화 때문이고, 그 저변에는 군국주의 시대에 대한 향수 혹은 최근 일본의 우경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책은 일본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것으로부터 나아가 미화시키고 있다. 인류보편의 가치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대신 일본적 가치의 절대화, 이를 통한 편협한 일본주의의 실상을 드러낸다. 무사도의 기본 정신을 설명하면서 동양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유교적 가치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유사한 내용을 끌어들여 일본화한다. 동양적 가치를 마치 일본 고유의 것으로 둔갑시키고 이를 찬미한다. 심지어 서양의 가치도 과감히(!) 일본화시켜 버린다.

일본인에게는 자신들의 경제적 자부심을 정당화하고, 그에 걸맞는 미학적 우수성을 나타내는 표상이 필요했다. 전쟁으로 점철되었던 그네들의 역사에서 오늘날의 세계에 긍정적인 모습을 이끌어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무사도인 것이다. 실제 무사계급은 근대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소외되었지만, 이제 일본의 역사적 자긍심을 위해 멋지고 아름답게 치장해 나라를 대표하는 모델이 된 것이다.

니토베가 책에서 ‘철학적인 면의 결여’ 등 무사도의 부정적인 점을 지적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래사장의 바늘 하나 정도일 뿐, “무사도의 멋스러움, 훌륭함, 특별함이 부각된 반면 그 무시무시함, 살벌함, 잔인함은 은폐되어 있다”. 결국 용맹을 중요시하고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를 강조하는 일본의 전통적 무사도는 2차 세계대전에서의 남경대학살과 우리나라의 전쟁위안부로 상징되는 갖가지의 비인도적 만행을 일으켰다. 또 전후에는 경제동물이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까지 도덕성이 결여된 경제전쟁을 전개하여온 부정적 요소를 낳았다. 이 모든 것의 이론적 배경을 만들어준 것이 바로 니토베의 이 책인

 

것이다.

요즘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의 태도는 자못 걱정스럽다. 게다가 학교에서 무사도를 가르치도록 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교육기본법 논란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소식이다. 그런 마당에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이라는 시리즈 명이 자꾸만 눈에 걸린다. 사무라이 정신이 세계의 교양이고 이젠 알아야 한다? 일본의 정신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러기에 이 책은 위험한 일본 전통을 너무 매혹적으로 포장해 두었다.

하아무(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