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무

세상은 전쟁터, “먹지 않으면 먹힌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16. 04:24

<새 삶을 꿈꾸는 식인귀들의 모임>-파스칼 브뤼크네르, 작가정신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영화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흡혈귀 이야기의 탄생 비화 중 하나.

중세 유럽에서 권력자들에게 착취당하며 살아가던 민중들이 뒷간에 앉아 생각해냈다는 설. 이렇게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삶은 무엇 때문이고, 우리는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나? 그래,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은 귀족들이지. 귀족들은 우리 목을 물어뜯고 피를 빨아대고 있어. 쪽쪽쪽.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쪽쪽쪽쪽.

1992년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드라큘라>

진화된 드라큘라

예전엔 흡혈귀 영화하면 대부분 드라큘라가 주연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좀더 현대화된, 혹은 진화된 녀석들이 등장한다. 십자가나 마늘 따위에 내성을 지녔고 더 강력해졌다. 종교나 도덕이 도무지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녀석들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의 피를 빠는 것이다. 인간들 사이에 섞여 힘없는 자들의 피를 빤다. 쪽쪽, 쪽쪽쪽. 인간을 유인하는 기술이 눈에 띄게 발달했다. 바다 이야기, 경마, 마약, 컴퓨터 게임, 홈쇼핑, 다단계, 오빠 나 오늘 한가해요….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식인귀

다행히 이 책에 나오는 발튀스는 그런 삶을 반성할 줄 아는 녀석이다. 사람, 특히 어린아이를 즐겨먹는-인간을 통째 요리해 먹는 식성만 보자면 피만 빨아대는 흡혈귀보다 한수 위다- 식습관을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대대로 식인귀를 섬겨온 채식주의자 집사의 도움을 받는다. 악습을 버리려는 저 황당하면서도 눈물겨운 몸부림!

하지만 한번 맛들인 사람 고기의 맛은 포기하기 어렵고 어렵다. 바다 이야기가 무슨 어시장에서 물고기 사는 것인 줄 알고 발을 들인 가장은 맥주병처럼 자꾸 가라앉으면서도 나올 줄 모르고, 쇼핑에 치맛바람이 주특기인 주부도 “그런 재미라도 없으면 무슨 맛으로 세상 살겠어?” 구멍난 가계부는 안중에도 없고, 게임에서 치고 차고 찌르고 파괴하던 아이는 골목길에 숨어 힘없는 녀석들 대상으로도 해보고 싶어 안달복달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포기하기 어려운 게 민중 위에 군림하며 민중의 고혈을 빠는 일이 아닐까.

"넌 식인귀니, 사람이니?"

금단증세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잘 참던 발튀스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집사의 눈을 피해 아이를 돌보는 직업으로 위장해 결국 맡은 아이를 갖은 양념을 해 오븐에 구우려는 해프닝을 벌인다.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처음 계획이 몽땅 실패하자 발튀스는 스스로 거대한 스프 냄비 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리고 그 스프를 먹은 수많은 아이들이 다시 식인귀가 되고 만다.

놀라지 마시라! 이건 동화책이다. ‘누와르(noir, 암흑)동화’란다. 우리나라에 소개하면서 ‘어른을 위한 동화’로 포장했다. 참 애매한 동화임에 틀림없다.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내적 세계를 그리고 있지도 않고 교육적인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자본주의의 정글에서 타인을 먹어치우는 우리 자신을 그려낸 동화’라는 무거운 주제를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과 경쾌함이 살아있는 이 동화는 우리 귀에 가만히 속삭인다. “넌 식인귀니? 아님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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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 작가정신 펴냄
르노도상, 메디치상 수상작가의 어른을 위한 동화집. 식인귀 발튀스는 좋아서 아이들을 먹고 화학자 폴콘은 싫어서 아이들을 없애는데, 이 둘 모두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들이라는 대상을 통해 화해를 시도하고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