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동물들의 잔혹한 복수극!
인간에게 버림받은 동물들의 복수극
《동물 애호가를 위한 잔혹한 책》-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민음사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던 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반쯤 넘었다가 다시 제 차선으로 돌아갔다.
놀란 나는 쌍시옷을 반쯤 꺼냈다가 뒤에 앉은 딸아이를 떠올리며 그것을 다시 꿀꺽 삼켰다.
대신 속으로 ‘정신 나간 운전자’ 욕을 실컷 했다.
곧 반대 차선 한가운데 개나 고양이로 보이는 사체가 너부러져 있음을 발견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앙선 침범이라니.
여전히 투덜거리며 나는 덤으로 애완동물을 키우다 버리는 개념 없는 족속들 욕까지 추가했다.
죽을 뻔했잖아.
'에이, 죽을 뻔했잖아-'
그렇게 달려서 장유 처형 집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일!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 등장한 것이다.
말티즈 종이란 개였다.
오랜만에 같이한 동서간 술자리는 녀석 때문에 개판(!)이 되고 말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을 오가며 껄떡대고, 기어오르고, 오줌 싸고, 물어뜯었다.
솔직히 나는 개를 싫어한다. 애완동물은 죄다 싫어하는 편이다.
나와는 다른 방식의 소리나 행동 때문에 내 생활이 간섭 받는 게 싫다.
무엇보다 개든 고양이든 가까이 오기만 하면 코가 간질간질해지고 온몸이 근질거린다.
모름지기 짐승은 짐승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개가 인간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생각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노벨상을 받은 비교생태학자 콘라드 로렌츠가 “개가 인간으로 보인다”고 한 것도 나름대로 이해하고, (브리짓 바르도는 놀라 자빠지겠지만) “개도 가축”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동물 애호가를…》을 쓴 하이스미스의 동물 사랑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하이스미스의 동물 사랑은 다른 애호가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녀의 동물 사랑은 동물 자체에 대한 애착보다는 인간에 대한 혐오가 출발점인 듯 보인다.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 더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
열세 편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개, 고양이, 햄스터, 코끼리, 말, 닭, 돼지, 심지어 바퀴벌레까지 인간의 온갖 학대에 견디다 못해 주인을 잔혹하게 죽이는 복수극을 벌인다.
가령 <베네치아에서 가장 용감한 쥐>의 경우, 아이들의 심심풀이로 다리가 잘리고 눈이 파인 쥐는 가족들이 없는 틈을 타 갓난아기의 코와 뺨을 물어뜯어 죽임으로써 끔찍하게 복수한다.
가히 ‘어둠의 소설가’라는 명성에 걸맞는 장면 아닌가.
이처럼 섬뜩하고 잔혹한 내용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하이스미스는 심리묘사에 탁월했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 등의 작가들과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
알랭 들롱이 주연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2000년엔 《리플리》로 리메이크 되었다)의 원작 《재주꾼 리플리》를 써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기막힌 발상의 전환!
《동물 애호가를…》은 장편소설로 입지를 다진 하이스미스가 유럽으로 건너가 쓴 단편소설집이다.
인간의 이야기를 동물에 빗댄 흔한 방식이 아니라, 동물 이야기를 동물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기막힌 발상의 전환! 그녀의 문학성을 영화가 아닌 작품으로 직접 만나보길 권한다.
-뱀다리 하나, 그래도 나는 애완동물이 싫다.
-뱀다리 둘, 제발 키우다가 버리지 말자.
하아무(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