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무

아름다운 사람 있어 더 아름다운 지리산과 섬진강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26. 17:39

그이들끼리 살데 ; 풍경 소리

나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두루 떠다니는 풍경 소리인데 말입지.
그렇다고 딱히 천은사나 실상사나 화엄사나 연곡사나 칠불사나 쌍계사 같은 절집 한 곳의 풍경 소리라고 할 필요는 없지 싶으네 그려.

 

실은 그 지리산에 기댄 절집의 여러 풍경 소리가 합쳐진 소리이기도 하고, 또 실은 신라 때 산청 단성에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없어진 단속사 풍경 소리도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지.

아니 지리산에 기댄 절집뿐만 아니라 금강산이며 백두산 절집 풍경 소리까지 내 숨결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게라.

그러니 어디 풍경 소리냐고들 소속을 묻지들 말고 그저 나를 나로 봐주기를 바란다는 말입지. 갤갤갤…….

그이들은 살데. 그이들은 살데.

내가 말입지, 워낙에 떠돌아 다니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태생이 어디 한 군데 붙어 있지 않게 태어나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었다 말이우다.
어떤 편인가 하면 말이지, 박상륭라는 소설가가 썼다는 <죽음의 한 연구>를 보면 유리의 동구에서 만난 늙은 중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남.

 

“동행인이 있을 리나 있어야 말이지.
어쩌다 문둥이패며 쇠장수들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말이지, 그들 따라 걷다 보면 허기는 나도, 다음 장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듯한 생각이 들고도 했지만 말이지, 헛헛헛, 파장 때마다 그런데 나는, 갈 곳이 없더라구.
또 걷는 거지. 저 장터의 환한 불빛을 등뒤로 하고 걸을 땐 왠지 서럽기도 서럽더구랴.
걷는 게야. 그 장터에서 조금 얻어 먹은 걸 쓰게 토해내서 씹으면서, 백팔염주 헤아리듯, 발걸음을 세며 걷는 게야.”

나도 그 늙은 중이나처럼 그렇게 지리산과 섬진강을 떠돌아 다녔던 것인데 말입지.
눈치를 챘겠지만, 늙은 중처럼 다니다 보니 내가 아주 무균(無菌)스러이 여겨지고 말투도 엇비슷하게 바뀌고 말았더라니께는. 갤갤갤…….

어찌 되었거나 지금은 내가 돌아다님서 보고 듣고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엥?
그러라고 하아무인지 아무갠지가 나를 불러내지 않았남. 헛헛헛, 갤갤갤…….
가만있어 보라고, 쐑쐑거리는 목구멍에 피가래가 고였으니 그거 한솜뭉터기나 뜯어서 쏴던져 버리고 시작하자 말입지.
카악 칵칵칵, 깍깍깍 까악.

 

이 가을, 바위를 골라
우는 추녀끝
뜰에 떨어지는 풍경 소리에

그이들끼리 살데.

이제, 돌아와 한 번 잊은 뒤,
도로 가고 싶은
그이들의 얼 바람진 산허리.

그이들은 살데. 그이들은 살데.
-고은, <泉隱寺韻> 부분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이 꼭 그러하더라 말입지, 꼭 그러하더라니께는.
그게 뭐 천은사 꼴짝만 그런 게 아니라 쌍계사 꼴짝도 그러했댔고, 절집 없는 꼴짝도 다들 도리뱅실 그이들끼리 살데.

산가시내가 몽땅 서울가시내가 되어 버려서...

가시내야 山가시내
네 눈동자 그믐밤 같아 정이 들면
너와지붕 추녀끝 고드름 발을 치고
깊은 잠에 들겠다
-송수권, <靑鶴洞에서> 부분

이런 백치 같은 어여쁨을 가진 가시내를 자주 만나고 싶은데 말입지,
그런 가시내를 만나면 하루 종일 신이 나서 휘파람도 휘휘 불고 하루에 백 번도 천 번도 넘게 나무며 풀이며 바위너설이며 노루 꼬리며 긴꼬리제비나비의 더듬이며를 모두모두 쓰다듬어 주겠는데 말입지,
이제는 산가시내가 몽땅 서울가시내가 되어 버려서 말입지,
여기서는 도통 볼 수 없으니 영 여엉 서운하게 되었더라니께.

탁수기씨는 화개 장터에서
반달낫 갈며 한 오십 년 살았지
(……중략……)
아니 아니 운천리 안열 부락 김초시네
둘째딸 생각으로 별이 보이지 않았지
(……중략……)
그 이쁜 전라도 가스나 동란 끝나고 죽었지
산사람 밥 한 솥 푸짐하게 해낸 죄로 강물되어 떠났지
-곽재구, <화개 장터> 부분

 

세월에 혹은, 어지러운 역사에 그리운 사람 떠나보내고 이제는 별 찾는 사람도 없는 반달낫을 오십 년 갈며 사는 사람만 남아 있습지.

“고스레 고스레 거칠은 강바람에 소주 한 잔 부으며/ 앞으로도 한 백년 운천리 백사장 별을 헤”면서 간신 간신히 살아가겠습지.
가끔은 “이 강변을 떠난 사람/ 갈숲 멀리 깜박이는 불빛/ 그 흔한 모시조개 황새고동 버려두고/ 그믐밤 숨죽인 삿대질로/ 여윈 물굽이를 돌아가던 사람들/ 모두들 잘 있는지”(곽재구, <화개에서> 부분) 궁금해지기도 한다니까 그려.

바깥 사람들은 강으로 산으로 들어오려 하고
안에 사는 사람은 기어코 나가려고들 하고...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강으로 산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어코 나가려고들 하니 말입지.

여름 한철 그대가 일하고 있는 河東 고을 가까운 데로 가서,
나도 일하거나 산에 오르거나 자빠져 잠들고 싶다.
그대 가까운 데서 더욱 잘 내 몸에 맞는 우리나라 산이 깊어,
나도 진초록 몸으로 다시 태어날까부다.
-이성부, <智異山 골짜기로 가서-다시 진의장에게> 부분

걸어나오고 싶었다
하루에도 문득문득
사람 구경 좀 했으면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걸어나오다가
화개동 으슥한 곳 만나면
화전 한 뙈기로 업지었다가
날씨를 봐가면서
섬진강 나루에 닿아 배를 띄우고 싶었다
-정규화, <지리산 수첩.4> 부분

찾아 들든, 찾아 나가든 산과 강이 아름다운 건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겠으나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는지.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외쳐대는 저 도시의 걸귀들

살다가 살다가 마침내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일일 터.

 

섬진강 은어잡이들은 가짜 미끼를 써서 은어를 낚는답니다 은어들은 플라스틱으로 된 가짜 암컷을 홀리려다가 낚시에 걸리곤 합니다 아 저는 무슨 미끼에 홀려 달려가고 있습니까.
-한승원, <섬진강 은어잡이들은-열애 일기 29> 전문

겨울 섬진강가에 가서 만나고 싶구나
길 위에 함부로 박힌 마침표들을 차면서, 굴리면서
돌돌 우리는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지
물소리 바람소리 흐르다간 맴돌다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추억들, 되새기며
금모래알 단단한 결정으로 날아오르고 싶구나
-손택수, <쌍계사 되새떼> 부분

그들은 시골에서 죽은 듯이 하찮은 삶을 겨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은 전혀 다르다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다 삼키고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외쳐대는 저 도시 걸귀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살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도통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지.

그 나무의 죽은 뿌리는 아직도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힘으로 땅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하얀 뿌리의 손아귀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빨간 흙은 갈비뼈 안에서 꿈틀거리는 심장처럼
여전히 가쁜 숨 쉬며 헐떡거리고 있습니다.
-김기택, <지리산 고사목> 부분

섬진강은, 지리산은 아름답지만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더 아름다운 곳이라 하지.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부분)
내 적당한 때마다 섬진강과 지리산 소식은 바람결에 들려줄 터이니.
갤갤갤, 안, 안렝히, 자 안렝히, 성불헙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