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소설
고도를 찾아서(4)육체가 아닌 영혼을 원했다고?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7. 03:02
3.
꿈속에서 꿈을 꾸는 일이 계속되었다.
퇴근하고 오피스텔 문을 열자 고도가 다가왔다. 벌거벗은 그의 몸은 보기에도 훌륭했다. 게다가 탄력 있고 강했다. 그런데 고도보다 고도의 욕망이 먼저 내 손목을 잡았다.
“아아, 오늘은 싫은데……. 생리 때문에 오늘은 좀…….”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거부했다. 물론 생리는 없었다. 다른 꿈속에서 자동판매기가 되었던 기억이 그런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니, 그게 싫으면 곧장 집으로 가지 말았어야지, 하고 잠 밖의 내가 생각했다. 하지만 곧 이 상황은 꿈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꿈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고도가 덤비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고도는 의외로 선선히 물러섰다.
“알았어. 내가 당신한테 원하는 건 당신의 영혼이지 피가 아니니까.”
고도의 대답에 나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내 영혼을 원했다고? 그냥 서로의 육체를 원한 게 아니고, 그럼 정말 나를 사랑한단 말인가?
그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물었다.
“내 가시가 모두 몇 개나 되는지 알아?”
나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고, 당연하다는 듯 고도는 그의 등을 내게 보이며 말했다.
“1만 6천 개 쯤 돼. 금강산 봉우리보다 많지.”
왜 저런 얘길 하지? 나는 그의 입만 바라보았다.
“난 매일 내 가시에 무언가를 꽂아야 마음이 놓여. 그러지 않으면 가시가 근질거려 도무지 참을 수가 없거든. 지금까지는 당신 영혼을 꽂아왔어. 당신의 즐거움, 환희, 꿈, 그리고 당신의 우울과 슬픔, 고통까지 수많은 감정과 표정을 수집했어. 아니, 뭐 그리 놀랄 건 없어. 당신은 평소 너무 많은 감정의 소비 때문에 힘들어 하고 괴로워했잖아. 그리고 어떡하면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원하는 방법으로 일 처리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낼지 생각해왔잖아, 항상.”
나는 그냥 그와 잠자리만 해왔을 뿐인데, 그는 어떻게 나에 대해 저리 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생리중이 아니라는 것도 알 텐데……. 내 눈썹이 어색하게 찌푸려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고도는 내 표정과 상관없이 말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여기저기 구경을 꽤 했어. 이젠 낮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익숙해졌어. 쉬고 있어. 난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그는 나를 남겨 두고 혼자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어딜 가고 무얼 하는지 모두 보였다. 아하, 이게 호접지몽(胡蝶之夢), 나비의 꿈이요, 장주(莊周)의 꿈이로구나. 장자처럼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중이렷다, 그냥 혼자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적당한 높이, 적당한 거리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었다. 조물주나 신의 높이보다는 낮겠지만 제법 그럴듯한 기분을 느끼게는 해주었다. 어찌 생각하면 캠코더를 들고 그를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 어느 순간 내가 찍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뭐, 무슨 상관이랴.
고도는 꽤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단독주택이나 아파트, 자취방이나 찜질방, 여관, 지하철 안, 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남녀노소, 꽃미남, 왕따, 잘 생기고 못 생긴 것 따위를 가리지도 않았다. 유명도 무명도, 돈이 많고 적음도, 권력의 있고 없음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 곁에 가만히 다가가 사람들의 머리뚜껑을 열어 보거나 가슴을 열어서 살폈다. 그리고는 그들의 영혼을 꺼내 자신의 가시에 꽂으면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몇 번 따라다니다 보니,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고도가 찾아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좋아하는 부류가 있었다. 아무리 작은 영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그였지만, 그중에서도 욕구나 욕망의 크기가 큰 사람들의 영혼에 크게 만족감을 나타냈던 것이다. 마치 그 욕구나 욕망이 고도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듯했다.
어느날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에게 따졌다.
“그래, 사람들의 영혼을 수집하는 게 기분좋아요? 날마다 1만 6천 개씩, 당신의 탐욕은 정말 지독하군요.”
하지만 고도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뭘 모르는군.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영혼을 팔아왔어. 당신도 잘 알잖아. 검은 흙에 뱀의 피나 닭의 피로 흑마술의 별모양 마크를 그리고 주문을 외는 의식 말이야. 인간이 가지기 힘든 큰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오래 전부터 이용해왔었지. 나는 다만 사람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 뿐이라고. 굳이 복잡하게 흑마술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피차 좋잖아.”
당신도 잘 알잖아, 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그래,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지. 글을 더 잘 쓸 수만 있다면,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고.
고도는 고슴도치로 모습을 바꾸고 꿈속의 꿈을 빠져나가며 내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어때? 포도원을 해보는 게?”
*
아니, 벌써 다녀오셨어요? 저는 지금 아주머니가 주신 책, 거기에 실린 친구의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에요. 거의 다 읽어가요. 사실 예전과 주제도 그렇고 문장도 많이 달라져 내심 놀라고 있었어요. 그 때문인지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져 빨리 읽히지가 않네요. 아, 서 계시지 말고 이리 오세요. 제가 녹차 준비해 올게요.
그래요? 아니, 그 집에 수정이 말고는 아무도 안 사는 걸로 되어 있다구요? 분명히 같이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고씨 성 가진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아저씨께 물어보고 오시는 길이라고요? 가구주가 그냥 수정이로 되어 있단 말이지요? 그럼 고슴도치나 고도는 단순한 소설적 장치일 뿐이라는 말인가?
예? 아, 아니에요. 차 드세요. 아, 소설이 꼭 자기 이야기를 써놓은 것 같아서 꼼꼼히 읽고 있어요. 안 읽어 보셨다고요? 글쎄요, 꿈 이야기에다 여러 가지 비유법을 섞어놔서 명확하지는 않아요. 나중에 친구한테 직접 들어봐야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여간 일단 이 소설부터 찬찬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봐야 하겠지요.
수정이도 못 본 지 대여섯 달 되었다구요? 작년 가을에 보고 못 보셨단 말이에요? 어쩜……, 그러니까 작년 포도농사 망치고 난 후 그리 됐다는 말이지요? 하기야 좋은 일도 아니고 서로 얼굴 보기 민망할 수도 있겠네요. 뭐, 평소에 내왕이 잦았던 사이도 아니었다니까…….
*
고도를 찾아서(5)는 5월 8일 이어집니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일이 계속되었다.
퇴근하고 오피스텔 문을 열자 고도가 다가왔다. 벌거벗은 그의 몸은 보기에도 훌륭했다. 게다가 탄력 있고 강했다. 그런데 고도보다 고도의 욕망이 먼저 내 손목을 잡았다.
“아아, 오늘은 싫은데……. 생리 때문에 오늘은 좀…….”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거부했다. 물론 생리는 없었다. 다른 꿈속에서 자동판매기가 되었던 기억이 그런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니, 그게 싫으면 곧장 집으로 가지 말았어야지, 하고 잠 밖의 내가 생각했다. 하지만 곧 이 상황은 꿈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꿈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고도가 덤비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고도는 의외로 선선히 물러섰다.
“알았어. 내가 당신한테 원하는 건 당신의 영혼이지 피가 아니니까.”
고도의 대답에 나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내 영혼을 원했다고? 그냥 서로의 육체를 원한 게 아니고, 그럼 정말 나를 사랑한단 말인가?
그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물었다.
“내 가시가 모두 몇 개나 되는지 알아?”
나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고, 당연하다는 듯 고도는 그의 등을 내게 보이며 말했다.
“1만 6천 개 쯤 돼. 금강산 봉우리보다 많지.”
왜 저런 얘길 하지? 나는 그의 입만 바라보았다.
“난 매일 내 가시에 무언가를 꽂아야 마음이 놓여. 그러지 않으면 가시가 근질거려 도무지 참을 수가 없거든. 지금까지는 당신 영혼을 꽂아왔어. 당신의 즐거움, 환희, 꿈, 그리고 당신의 우울과 슬픔, 고통까지 수많은 감정과 표정을 수집했어. 아니, 뭐 그리 놀랄 건 없어. 당신은 평소 너무 많은 감정의 소비 때문에 힘들어 하고 괴로워했잖아. 그리고 어떡하면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원하는 방법으로 일 처리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낼지 생각해왔잖아, 항상.”
나는 그냥 그와 잠자리만 해왔을 뿐인데, 그는 어떻게 나에 대해 저리 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생리중이 아니라는 것도 알 텐데……. 내 눈썹이 어색하게 찌푸려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고도는 내 표정과 상관없이 말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여기저기 구경을 꽤 했어. 이젠 낮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익숙해졌어. 쉬고 있어. 난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그는 나를 남겨 두고 혼자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어딜 가고 무얼 하는지 모두 보였다. 아하, 이게 호접지몽(胡蝶之夢), 나비의 꿈이요, 장주(莊周)의 꿈이로구나. 장자처럼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중이렷다, 그냥 혼자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적당한 높이, 적당한 거리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었다. 조물주나 신의 높이보다는 낮겠지만 제법 그럴듯한 기분을 느끼게는 해주었다. 어찌 생각하면 캠코더를 들고 그를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 어느 순간 내가 찍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뭐, 무슨 상관이랴.
고도는 꽤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단독주택이나 아파트, 자취방이나 찜질방, 여관, 지하철 안, 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남녀노소, 꽃미남, 왕따, 잘 생기고 못 생긴 것 따위를 가리지도 않았다. 유명도 무명도, 돈이 많고 적음도, 권력의 있고 없음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 곁에 가만히 다가가 사람들의 머리뚜껑을 열어 보거나 가슴을 열어서 살폈다. 그리고는 그들의 영혼을 꺼내 자신의 가시에 꽂으면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몇 번 따라다니다 보니,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고도가 찾아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좋아하는 부류가 있었다. 아무리 작은 영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그였지만, 그중에서도 욕구나 욕망의 크기가 큰 사람들의 영혼에 크게 만족감을 나타냈던 것이다. 마치 그 욕구나 욕망이 고도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듯했다.
어느날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에게 따졌다.
“그래, 사람들의 영혼을 수집하는 게 기분좋아요? 날마다 1만 6천 개씩, 당신의 탐욕은 정말 지독하군요.”
하지만 고도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뭘 모르는군.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영혼을 팔아왔어. 당신도 잘 알잖아. 검은 흙에 뱀의 피나 닭의 피로 흑마술의 별모양 마크를 그리고 주문을 외는 의식 말이야. 인간이 가지기 힘든 큰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오래 전부터 이용해왔었지. 나는 다만 사람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 뿐이라고. 굳이 복잡하게 흑마술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피차 좋잖아.”
당신도 잘 알잖아, 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그래,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지. 글을 더 잘 쓸 수만 있다면,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고.
고도는 고슴도치로 모습을 바꾸고 꿈속의 꿈을 빠져나가며 내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어때? 포도원을 해보는 게?”
*
아니, 벌써 다녀오셨어요? 저는 지금 아주머니가 주신 책, 거기에 실린 친구의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에요. 거의 다 읽어가요. 사실 예전과 주제도 그렇고 문장도 많이 달라져 내심 놀라고 있었어요. 그 때문인지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져 빨리 읽히지가 않네요. 아, 서 계시지 말고 이리 오세요. 제가 녹차 준비해 올게요.
그래요? 아니, 그 집에 수정이 말고는 아무도 안 사는 걸로 되어 있다구요? 분명히 같이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고씨 성 가진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아저씨께 물어보고 오시는 길이라고요? 가구주가 그냥 수정이로 되어 있단 말이지요? 그럼 고슴도치나 고도는 단순한 소설적 장치일 뿐이라는 말인가?
예? 아, 아니에요. 차 드세요. 아, 소설이 꼭 자기 이야기를 써놓은 것 같아서 꼼꼼히 읽고 있어요. 안 읽어 보셨다고요? 글쎄요, 꿈 이야기에다 여러 가지 비유법을 섞어놔서 명확하지는 않아요. 나중에 친구한테 직접 들어봐야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여간 일단 이 소설부터 찬찬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봐야 하겠지요.
수정이도 못 본 지 대여섯 달 되었다구요? 작년 가을에 보고 못 보셨단 말이에요? 어쩜……, 그러니까 작년 포도농사 망치고 난 후 그리 됐다는 말이지요? 하기야 좋은 일도 아니고 서로 얼굴 보기 민망할 수도 있겠네요. 뭐, 평소에 내왕이 잦았던 사이도 아니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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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찾아서(5)는 5월 8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