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애...가시나...가시내..."욕도 정겨울 수 있다?"
『가시내』, 김장성 글, 사계절
나는 친한 여자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가시나’라는 말을 쓴다. 이것은 친근함의 표현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후배에게 ‘가시나’라는 말을 쓰면 금세 친한 관계가 형성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이 드신 어른들이 ‘가시나’라고 하면 차별적이거나 비하하는 말로 쓰인다. 계집애가 그것도 못하냐, 계집애가 그런 걸 해서 뭐하냐는 식으로 쓴다. 그래서 ‘가시나’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똑같은 말인데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발화를 하는가에 따라 뜻이 아주 달라진다.
『가시내』 그림책은 ‘갓 쓴 아이’에서 ‘가시내’가 되었다는 말의 근원을 줄거리로 한다. 옛날 아주 개구지고 씩씩한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이 무렵 나라에 오랑캐가 쳐들어 왔다. 남정네들이 전쟁터로 달려가자 이 여자 아이도 전쟁터에 나갔다. 그러나 장군은 “썩 돌아가거라. 남자와 여자는 할 일이 따로 있느니라. 나라는 사내들이 지키는 거야.” 하며 여자 애를 돌려보냈다. 이튿날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적군들 사이에서 말을 타고 돌팔매질을 하는 용감한 갓 쓴 아이가 있었다. 갓 쓴 아이 덕분에 전쟁에서 이기게 되고 아이가 갓을 벗었을 때 바로 전날 돌려보냈던 여자 아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 뒤로 그 여자 아이를 ‘갓 쓴 애’ 라고 불렀고 그 말이 ‘가시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어린이 책을 공부하는 ‘책을 먹는 여우들’ 모임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회원이 이 책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면서 이런 말을 들어보았는가를 물었는데, 이런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고 했다. 또 ‘가시내’라는 말을 한번도 자기 딸에게 써 보지 않은 회원도 있었다. 더 이야기를 하다보니 ‘가시나’라는 말을 한번도 긍정적으로 들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자신도 딸에게 그런 말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가시나’, ‘가수나’ ‘기집애’ 라는 말을 한다. 사내 아이에게 ‘머스마’, ‘머슴애’라고 부르는 것처럼 친근감 있는 말로 쓴다.
말에도 색깔이 있고, 정감이 있고, 값어치가 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쓰느냐에 따라 완전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어느 시인은 욕쟁이 할머니들의 구수한 욕을 듣기 위해 욕쟁이 할머니가 하는 식당을 찾아간다고 한다. 욕 먹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말하는 이의 마음 씀씀이와 입버릇이 묻어있는 욕설은 정겨울 수 있다. 『가시내』라는 그림책을 보는 사람들은 ‘가시내’라는 말에 들어있는 색깔과 정감과 값어치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한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