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은 힘이 세다, 하나님도 그랬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미셸 투르니에, 한뜻
하아무(소설가)
상상력은 힘이 세다. 그래서 파스칼도 이렇게 말했단다. “상상력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움직인다. 그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 정의 그리고 행복을 창출한다.”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할 때 먼저 깊이 생각하고 상상력을 발휘한 다음 뚝딱 만들었다지 아마.
상상력과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건 이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생명과도 같다. 정치가도, 경제인도, 사회운동가도 다 안다.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들도 당연히 안다. 중요하다는 건 다 아는데 실제로 잘 하지는 못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을 배우지도 못했고, 그 과정을 허용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참신하고 기발한 생각은 환영하지만 오랜 시간과 깊은 사색, 수많은 실패 따위는 권장사항이 아니다. 이런 것을 방해하는 것은 도처에 널려 있다.
우선 시간이 없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충분한 느림과 여유가 필수다. 아침 일찍 학교 가고 마치면 학원에 학습지에 숨돌릴 틈 없는 아이들이 그 방법을 터득하고 배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천재도 그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서 들은 얘기다. 여유가 없으면 창의성도 없단다. 처칠도 날마다 낮잠을 빼먹지 않을 정도로 게으름을 즐겼단다. 그들에 따르면, 세상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 천재들 가운데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던 사람은 없었다는 거다.
그 다음 깊고 넓게, 다각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불쑥불쑥 내뱉는 말은 생각의 결과물이라기보다 단순한 배설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배설은 제때 빨리 하지 않으면 병이 되기 쉽지만, 생각은 안 그렇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지르면 배설, 충분히 생각하고 말하거나 쓰면 의견이 되고 사상이 되고 철학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에 달리는 댓글을 보노라면, 어휴, 모니터 위에 물내리는 장치를 하나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투르니에의 이 책은 남자와 여자, 고양이와 개, 소금과 설탕, 말과 글, 태양과 달, 신과 악마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110가지에 대한 독서와 사색의 결과물이다.
아아, 이 책을 펴보지도 않고 “남자와 여자가 뭔지 몰라서, 고양이와 개를 몰라서 개념을 정리한단 말인가? 할 일 없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라고 하지 말자. 마르크스가 ‘여자는 남자의 프롤레타리아’라고 말했던 배경
과 ‘남성은 타인으로서의 여성’이라고 주장했던 학자와의 사이에는 뚜렷한 인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유는 읽을수록 우리 마음속에 있던 어떤 것을 깨우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다소 이원론적인 사고에 근간을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양하고 상대적인 쌍들의 개념이 파고들수록 뭔가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먹고 금방 배설만 하는 건 인간보다 동물에 더 가깝다. 깊게 상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정의, 그리고 행복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