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버금가는 동양적 환타지의 보고
<산해경> 정재서 역주, 민음사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이젠 환타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대학 때부터 시와 소설을 써왔지만 쉽지 않았고, 이제는 방향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었다. 함께 문학동아리를 했던 선‧후배와 동료들 다수가 문학 자체를 포기한 마당에 그런 생각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아닌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괜찮은 환타지 소설을 읽지도 않았고, 환타지 문학에 대한 공부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몇몇 저급한 소설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 후배뿐만 아니라 이미 등단한 작가들 가운데 ‘전향’하거나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보았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 가운데 환타지 소설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환타지는 쉽다, 그러니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아주 큰 오해 혹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공부가 그렇듯, 환타지 문학도 해야 할 공부의 양도 많고 깊으며 읽어야 할 책 목록도 만만치 않다. 그 중요한 목록 가운데 하나가 <산해경>이다.
<산해경>은 중국의 고대 신화 자료를 가장 풍부하게 보존하고 있는 기이한 책이다. 수많은 산과 강, 먼 나라의 신들과 여러 기괴한 동물들, 신비한 처방 등이 넘쳐난다. 세계의 중심인 세계수(세계나무)는 높이가 100길로 가지가 없고, 위는 아홉 갈래로 빙글빙글 구부러져 있으며, 아래는 뿌리가 아홉 갈래로 뒤엉켜 있다.
온갖 환상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수많은 작가들이 <산해경>을 통해 더 많은 창조물을 만들어 내었으며, 나아가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현실 모순을 냉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의 대문호 노신도 어렸을 적에 <산해경>을 탐독하며 꿈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산해경>은 고대 요‧순 시대에 물난리의 피해를 막으려는 과정에서 얻은 지식들을 엮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물난리를 수습하기 위해 산과 강을 탐사하고 풍토와 다양한 산물들, 동식물을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접촉한 여러 나라 사람들로부터 들은 그곳의 지리, 신화, 전설 등을 기록해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지리서, 무서(巫書), 동식물 도감 등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산해경> 제9권 ‘해외동경’ 편에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그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며, 짐승을 먹이고 호랑이를 곁에 두고 부리며,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싫어한다”고 기록한 우리나라에 관한 부분을 바탕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요즘 갈수록 치열해지는 정치판의 아귀다툼과 거짓말을 보노라면 민망해진다.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싫어한다고?
하아무/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