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무

“정치는 추잡한 유희” 독설 퍼부어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9. 17:07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춘> 드리외 라 로셸, 중앙일보사

먼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유사한 제목 때문에 밝힌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춘〉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이 1982년이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발표된 것은 <세계의 문학> 1987년 6월호였다. 그래서 <…청춘>이 <…영웅>의 영향을 받아 붙여진 제목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웅>이 <…청춘>의 영향을 받았다면 몰라도.

그런데 원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춘〉이 아니다. 1939년에 발표된 드리외 라 로셸의 이 작품은 원제가 <질(Gilles)>이다. 주인공인 질 강비에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것인데, 번역자가 함부로(!) 바꿔버린 것이다.

물론 <질>보다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춘>이 뭔가 상징적이고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행위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번역자는 번역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해야지 원작자의 권한을 침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작가 드리외가 담담하게 주인공의 삶만을 생각하고 <질>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과 달리,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춘>이라는 제목에서 ‘우리들’이라는 범주 안에는 번역자까지도 포함된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질 강비에는 문제아고, 한마디로 개차반이다. 수많은 여자들과 육체적 접촉을 가지다가 돈을 겨냥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미리양 팔캉베르와 결혼한다. 그런 후에도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는 지속되고 끝없이 갈팡질팡한다. 질은 자아가 분열되어서 한편으로는 비겁하고 변덕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비판적이고 고독을 숙명처럼 이어나가는 매우 복잡한 인간”이다.

그래서 질은 냉철한 비판자로서 정치적 사회구조를 매섭게 폭로하고, 신문을 발행하면서 계급과 기계문명, 여러 주의주장과 정당 등 일체의 기존질서에 대한 독설을 퍼붓는다. 또 도취적이고 이상적인 여성을 찾아 사랑을 맛보고, 한편으로는 꿋꿋하고 건강하며 충실한 삶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주인공의 분열상은 어딘지 우리의 정치사회 구조와 많이 닮아 있다. 이른바 의회민주주의의 정체가 무엇이고 정치가 얼마나 추잡한 유희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한 앞에서는 도덕과 이상을 말하고 뒤로는 호박씨를 아예 가마니째로 까는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번역자는 한국적 정치사회 혹은 그것에 근본적 절망을 느끼고 있는 ‘우리’를 개입시켜 <질>대신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춘>이라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질이 승리의 가망이 전혀 없는 어둠 속에서 죽음을 예감하며 홀로 정신없이 총을 쏘아대는 모습은 매우 상징적이다. 썩어 문드러지고 활기를 잃어 무력해진 유럽, 타락하고 절망밖에 남지 않은 유럽을 개조하고 재생시킬 방법으로 파시즘을 선택했던 작가 드리외. 결국 2차대전 후 파시스트로 낙인 찍혀 자살하고 마는 자신의 상황을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하아무/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