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이 쌓여 폭발할 때까지 주절주절주절……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강홍구, 황금가지
하아무(소설가)
재미없다, 보고 싶지 않다, 못생기다, 나른하다, 권태, 흐릿하다, 지치다, 열정 없다, 안일하다, 구태의연, 하품, 허무, 허전, 썰렁, 무의미, 무가치, 일상성, 냉소, 하찮다, 무미건조, 시시껄렁, 쓸데없다, 유치하다, 평범, 일상, 낡음, B급 혹은 C급 혹은 그 이하, 나쁘다, 추악하다…….
시시하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는 말들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시하다는 것은 거의 저주에 가깝다. 사람들은 시시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 돈 내서 사려고 하지 않으니까. 천하의 김기덕 감독이라 해도 외국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기대하는 흥행성적 거두기는 녹록치 않다. 한 작품성 한다는 작가들도 서점가에서 귀여니 류의 판매고를 올리기는 역부족이다. 감각적 흥미만을 추구하는 현대인(현재 살고 있어서 현대인이지 정도를 따지자면 근대? 중세? 고대? 아니면 원시인?)의 취향은 저주에 다름 아니다.
이런 판국에 시시한 것들만 모아 책을 만들었다면 제 무덤 제가 판 꼴이다. 차례만 봐도 그렇다. 전봇대에 붙은 술집이나 전세 광고, 무차별적으로 배달되어 오는 신문 간지 광고, 스티커 사진, 붕어빵, 수많은 간판들, 현수막, 이발소 그림 따위. 눈만 들어 둘러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제아무리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포장해도, 누가 거금 14,000원을 내고 시시한 책을 사보겠는가. 그래, 하는 일이 소설 쓰는 일이다 보니 작은 것 하나라도 살펴보아야 하는 나 같은 사람 말고는. 분명히 말해두지만 내가 시시한 사람이어서 시시한 것에 마음 쓰는 건 절대 아니다. 부제에 붙은 것처럼 ‘우리 시대 일상 속 시각 문화 읽기’를 하려는 것일 뿐.
책을 펴볼까. 전봇대에 붙은 전세 광고나 잃어버린 개와 사람을 찾는 삐뚤빼뚤한 문자가 뭐? 전시장에서 만나는 서예 작품이나 세련되게 디자인 된 문자들이 잃어버린 감정과 삶의 호흡이라고? 아하, 우리의 삶과 갈수록 멀어져가는 예술작품과 달리 낮은 삶에 밀착된 형식이라는 말이렷다. 또, 오늘의 사진찍기는 이미지 소비를 위한 일종의 유희이거나 게임이라고? 시시한 책에서 시시한 것에 대해 얘기하면서 기호학까지 끌어들이다니, 너무 무리한 거 아닌가?
아니아니, 뽀샵(포토샵)이나 다양한 기법으로 실체보다는 허상, 시뮬라르크를 추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래그래, 규격화․획일화를 피하기 위해 머리 모양도 바꾸고 문신도 하고 갖가지 액세서리를 하다보니 처음에는 튀어보이는 듯하다가 다시 동일화가 일어난다는 지적은 옳다. 자본주의는 젊음을 제도화 한다고? 그래그래 맞다, 맞는 말이다.
버스정류장-천민 자본의 징표, 돈-권력의 기호, 플래카드-거대한 말씀들의 악몽, 간판들-정보는 많고 의미는 없다……. 읽다보니 이 사람, 강홍구 씨는 작고 흔한 생활 속 문화를 추억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사색과 분석의 대상으로 본다.
다만 한 가지, 제목은 잘못 되었다.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은 없고 그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추악한 자본이 우리의 일상 문화를 획일화하고 지저분하게 만든다고 불평한다. 불만을 가지고 계속 불평하다보면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며 늘어놓는다. 주절주절주절……, 불평이 쌓여 폭발할 때까지 주절주절주절……, 폭발 뒤에 올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주절주절주절……, 기대하시라,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