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하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고 싶을 때...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17. 02:03

≪모르는 척≫, 우메다 슌사쿠 글, 요시코 그림, 길벗어린이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들은 잘 어울려 다니다가도 한 명을 따돌리곤 한다. 자기들 취향에 맞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다라 따돌림 당하는 대상도 달라진다. 그럴 때면 그 중 누군가 쪼르르 달려와 고자질을 한다.

“쟤는 만날 잘난 척 하고, 자기가 공주인 줄 안다니까요.”

그러면 다른 아이가 와서 또 이른다.

“나만 빼고 다른 애들끼리 귓속말하고 그래요.

그런 건 나쁜 거잖아요. 쟤들이 착하다고 생각하세요?”

이쯤되면 슬쩍 물러나 모르는 척 하고 싶다. 자기

들끼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이런 정도의 사건들까지 어른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책 ≪모르는 척≫은 돈짱이라는 아이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내용이다. 야라가세를 중심으로 한 4인조는 돈짱이 단지 재채기를 했다는 것 때문에 폭력을 휘두른다. 돈짱은 그 이후로 4인조의 가방을 들어주고, 그 애들 앞에서 춤을 추거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또 반 아이들 앞에서 바지가 벗겨지는 창피를 당한다.

이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많다. 그 가운데 ‘나’의 시선이 계속 돈짱을 따라다닌다. ‘나’는 돈짱이 부당하게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지만 자신도 돈짱과 같이 당할까봐 아무 말도 못한 채 모르는 체 해버리고 만다.

‘나’의 시선으로 돈짱에게 벌어지는 일을 서술하는 부분은 독자가 돈짱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어 돈짱에게 모르는 체 했던 ‘나’의 죄의식이 곧 독자의 죄의식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 또한 수많은 부당함을 ‘나’처럼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뒷부분에서 ‘나’ 역시 야라가세 패거리가 훔친 샤프를 받고 협박을 당하고 친구들에게 모르는 척을 당하게 되는데, 독자들은 내가 남을 모르는 척 했다면 남들도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르는 척 할 것이라는 냉정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모르는 척 했던 죄의식으로 내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돈짱은 자신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고양이를 괴롭힌다. 그래도 마음은 개운치 않다. 돈짱은 학예회에서 원숭이 분장을 한 야라가세와 한 판 싸움을 붙어 야라가세의 바지를 벗기고 만다. 어떻게 보면 억울했던 마음이 풀린 듯도 하다. 그러나 복수를 했다는 것으로 마음이 풀릴 수는 없다. 우리 현실에서 보면 복수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돈짱은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간다. 또 야라가세 역시 자기보다 더 큰 형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돈짱이 마음이 괴로울 때면 찾아가는 포장마차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을 모른 척 하지 않는 것이 마음속에 등불을 밝히는 것이라고. 그래, 그렇게 우리도 마음 속 등불을 켤 일이다.

/한양하/

모르는 척 상세보기
우메다 쉰사코 외 지음 | 길벗어린이 펴냄
친구들에게 이지메를 당하는 한 친구를 보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마음의 변화를 그 린 장편그림책. 야라가세 패거리 4인조는 돈짱의 도화지 위해 그림물감으로 떡칠을 하지만 아무도 돈짱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돈짱은 전학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