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무

TV 보며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18. 06:13

속물근성 정면 비판한 철학우화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 C.M.뷔일란트/문학동네

고대 그리스의 도시 압데라. 치과의사 슈트루치온은 왕진을 가기 위해 당나귀 몰이꾼 안트락스의 당나귀를 빌린다. 가던 도중 너무 더워서 당나귀에서 내려 그 그늘에서 쉬게 되는데, 이 모습을 본 당나귀 몰이꾼은 벌컥 화를 낸다. 자신은 당나귀만 빌려 주었지 당나귀 그림자까지 빌려주지 않았다는 것. 요는 당나귀 그림자 사용료를 추가로 달라는 것.

치과의사 슈트루치온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발했다. 둘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시의 법정가게 된다. 사건은 치과의사와 당나귀 몰이꾼 편을 들기로 작정한 변호사가 개입함으로 해서 더욱 크게 번져간다. 게다가 둘은 자신의 입장이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도시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치과의사는 자신이 속해 있는 조합을, 당나귀 몰이꾼은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사제에게 줄을 대었다.

“소문은 갈수록 부풀어 갔는데, 그 내용이 불합리하고 믿기지 않고 사리에 맞지 않을수록 더욱 퍼져갔으며 사람들은 더욱 확실한 것처럼 믿으려고 했다.” 도시 전체는 서서히 어처구니없는 진통에 휩싸여간다. 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동기로 인해 사건은 치과의사 편과 당나귀 주인 편이 서로 나뉘어 권력다툼으로까지 불이 번지고 시민전쟁으로 치닫게 되어 압데라 도시국가를 파멸의 문턱까지 끌고 간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뷔일란트의 작품을 격찬했다 한다. “속물근성이라 불리는 모든 것, 즉 앞뒤가 꽉 막힌 옹졸함, 소시민적 소극성, 옹색한 겉치레 예절, 편협한 비판, 거짓 점잔빼기, 천박한 안일, 주제넘은 위엄, 다수란 이름을 빌린 세속성 등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당나귀 그림자> 혹은 <당나귀 그림자 재판> 따위의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연극 무대에 올려지곤 한다. 200년이 훨씬 지난 작품이 오늘날에도 유통된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그만큼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 전 사회적으로 만연한 학력 위조, 학살자의 호를 딴 공원 이름이 버젓이 걸리는가 하면, 난개발로 인해 해마다 자연재해로 난리법석을 떨면서도 또다시 대규모 개발사업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마지막 결론부다. 그런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압데라 사람들은 마지막에 모두 웃는다. 어리석은 다툼, 그것을 중심으로 펼쳐진 인간 세상의 어리석음을 보며 울 것인가, 웃을 것인가. 궁극적으로 뷔일란트는 웃음을 선택한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비웃음.

그렇다. 우리가 신문을 보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

하아무(소설가)

* PS-광우병 사태로 파멸의 문턱에 이르른 그들(!)은 '광우병 그림자' 값을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 상세보기
C.M.뷔일란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당나귀를 빌린 사람은 당나귀만을 빌린 것인가, 그 그림자까지 빌린 것인가를 놓고 다투는 인간군상을 통해소유와 법, 국가와 사회, 헌법과 신앙의 문제를 냉소 적으로 풍자한 철학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