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탄성을 지르게 되는 책
‘쉽고, 뜻이 또렷하고, 아름다운 말’-한글
≪말꽃타령≫, 김수업, 지식산업사
한평생 대학에서 국어교사를 길러낸 김수업 선생의 우리 말 사랑에 대한 책이다. 평생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해온 학자의 책 치고 제목이 매우 독특하다. 흔히 ‘국어교육론’이라 할 ≪배달말 가르치기≫를 비롯해 ‘한국문학’ 혹은 ‘한국문학사’라 할 ≪배달말꽃≫, 이 책의 제목인 ≪말꽃타령≫ 등 우리 말을 살려쓴 제목이 많기 때문. 대부분 연구서지만 이 책은 대중적으로 읽을 수 있어 저자의 진한 뜻을 고스란히 느끼기에 충분하다.
국어사전에 올라있는 우리 말은 60, 70%가 한자어고 외래어 유입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김이사장은 국어사전이 자꾸만 ‘잡동사니말’로 채워지고 있음을 한탄한다. 그러면서 “내가 사랑하는 우리 말은 토박이말”이라고 못박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꾸고 써야할 우리 말은 ‘쉽고, 뜻이 또렷하고, 아름다운 말’이라는 것.
이 책의 첫 장 ‘가멸진 우리 이름씨 낱말’에는 그런 토박이말이 넘쳐난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나타내는 이름씨를 밝혀놓았는데, 눈 부위만 해도 눈두덩, 눈꺼풀, 눈지방, 눈시울, 가선, 눈망울, 눈자위, 눈굿, 눈귀, 눈초리, 눈매, 눈총, 눈독, 눈부처 등으로 아주 많다. 앞으로 넘어지면 ‘엎어지다’, 뒤로 넘어지면 ‘자빠지다’, 이도저도 아니고 옆으로 넘어지면 ‘쓰러지다’로 구분해 쓴다. 이토록 풍부하고 넉넉한 줄 알기는 했지만 볼수록 작은 탄성이 쏟아지게 한다.
‘사람’이라는 낱말은 ‘살다’와 ‘알다’가 어우러진 말이라 한다. ‘살+앎’이 ‘사람’이 된 것이고, 즉 ‘스스로 삶을 아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값지고 보람찬 삶이고 어떤 것이 헛되고 싸구려 삶인지 아는 것이 곧 ‘사람’이라는 말이다. ‘말’을 아는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고 또한 ‘세상’을 아는 것이므로, ‘우리 말’을 제대로 아는 것이 ‘참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특히 한자어나 외래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논리에 반박하는 김이사장의 주장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누구나 아는 우리 말을 오히려 시시하고 만만하게 여겨서 학문적 표현 자체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씀으로써 배제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것. 마치 의사가 처방전을 알아보기 어려운 영어로 휘갈겨 쓰듯이. 즉 학문적 깊이보다는 오히려 표현을 어렵게 해 일반인과 차별하려는 얄팍한 수단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다 보니 읽고 이해하거나 배우려는 사람들은 한글로 된 글을 보고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해석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 가르치는 사람도 해석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다시 해석이 분분해서 여러 사람이 혼선을 빚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게 현재 우리의 현실이다. 학문 용어와 일상 용어가 차이가 없는 서구 유럽국들과 다른 부분이다.
다시 한글날이다. 이태 전에 국경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우리 말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 주시경 선생의 말이다. 평생을 바쳐 우리 말을 지키고 ‘올리기’ 위해 노력해온 선생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경의를 표한다.
/ 하아무(소설가)
* 지난해(2007년) 한글날을 맞아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