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무

정치인들 말발, “꼼수가 보인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4. 17:46

야비하고 치사하고 더럽게 토론에서 이기는 비법


<토론의 법칙>-쇼펜하우어, 원앤원북스

하아무(소설가)

말발[명사] 말이 먹히어 들어가는 정도, 말의 권위. 흔히 속어로 말빨이라고들 쓴다.

드디어 때가 왔다. 입씨름의 대가들, 말빨로 모든 일을 해치우려는 이들, 토론이라는 형식을 앞세워 목소리 큰 것 자랑하는 사람들의 잔치판, 선거가 코앞에 닥쳤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꼼수가 빤히 보이는 말들이 난무한다.

어느 신문에선가, 논술 면에 논술의 3요소가 나온 적이 있다. 논점, 논지, 논거. 하지만 선량들은 논술 세대가 아니라 그런지 셋 다 무시되기 일쑤. 논점은 필요에 따라 왔다갔다하고, 수시로 말을 바꾸는 데야 논지가 무슨 필요, 논거야 있든 없든 황소고집으로 밀어붙이면 만사형통.

그들에겐 “선거에 나선 이상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지상 최대의 명제만 있을 뿐, 논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돈을 써도, 지킬 수 없는 공약을 해도, 상대를 비난하거나 거짓말을 해도, 선거법에 걸리지만 않으면 그 뿐.

그런데 이들 정치인들의 꼼수를 일찌감치 내다본 철학자가 있었다. 19세기에, 우리나라도 아닌 독일에서 말이다. 그는 염세철학으로 유명한 쇼펜하우어다.

이 책은 고상하고 점잖은 토론 지침서가 아니다. 토론에서 이기는 법, 다시 말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상대 혹은 청중에게 자신이 정당하게끔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다. 열거해 보면 상대의 주장 확대 해석하기, 불리하면 딴청 부리기, 말꼬리 잡기, 상대 화나게 하기, 말싸움 걸기, 상대 궤변에 궤변으로 맞서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억지 부리기, 최후의 수단으로 인신공격하기 등 모두 38가지나 된다.

한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필요한 질문들은 체계적이며 질서정연하게 할 것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하라. 그러면 그는 우리가 그 질문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아무 사전대비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로부터 얻어낸 대답들을 이용해 여러 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그의 대답을 이용해 정반대의 결론도 이끌어낼 수 있다.”

너무 야비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꼼수가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선거 기간 동안에 그런 꼼수 쓰는 사람을 실컷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야비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꼼수쟁이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더 나쁜 경우는 그런 사람이 당선되는 경우겠지만, 뭐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그런 사람들이 금뱃지 다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에 다행히(?) 면역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쇼펜하우어를 너무 나무라지는 말자. 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만 알려주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논쟁과 토론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간사한 잔꾀들의 실체를 밝혀냄으로써 꼼수쟁이들의 정체를 금방 알아차리고, 나아가 그들을 퇴치하기를 바랐다. 이 책의 진가는 바로 그 점에 있다.

토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진지한 토론판에 꼼수가 활개를 치고 있다. 꼼수를 확실하게 알아야 그것을 깰 수도 있다. 토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책을 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제발, 이제는 꼼수쟁이 정치인 그만 뽑자!

* PS-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경제'를 내세운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바람에 온국민이 광우병에 치를 떨고 있지 않은가. 그에게 경제를 살릴 능력이 없음을 불과 취임 석 달만에 확인한 지금, 남은 4년 9개월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토론의 법칙(쇼펜하우어의) 상세보기
쇼펜하우어 지음 | 원앤원북스 펴냄
논쟁과 토론에서 상대방에게 사용할 수 있는 38가지 토론기술을 담고 있다.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와 상관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토론에서 무조건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는 인간의 본능적 술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미발표 작이었던 이 책은 19세기에 쓰여진책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내용이 현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