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적 등장인물과 간결성으로 현실을 비틀다
<끄르일로프 우화집>-이반 안드레예비치 끄르일로프, 문학과 지성사
하아무(소설가)
우화하면 대부분 이솝을 떠올린다. 조금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라퐁텐 정도를 말할 수도 있다. 러시아에서 끄르일로프라면 러시아 문학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지만, 이솝이나 라퐁텐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적성 국가였으므로.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회주의에 대한 지독한 고정관념 외에도, 우화에 대한 고정관념도 만만치 않다. 우화가 교훈적·풍자적인 내용을 동식물 등에 빗대어 엮은 이야기로 삶을 헤쳐나가기 위한 지혜가 숨어 있다는 걸 알지만, 어린 아이 때나 읽는 것이라는 생각.
그런데 러시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무릇 러시아 사람이라면 끄르일로프 우화집을 반드시 두 번 읽어야 한다. 어릴 때 한 번,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한 번 더.” 그만큼 끄르일로프는 민중의 웃음과 지혜를 생생하게 표현해냈고, 황제를 비롯한 귀족을 예리한 풍자로 비판하며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런 끄르일로프의 우화가 갖는 힘은 당대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고 지금도 커져만 간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 보자. 200여 편에 달하는 우화 가운데 널리 알려진 <고양이와 꾀꼬리>.
매혹적인 노래로 유명한 꾀꼬리가 있었다. 고양이가 꾀꼬리를 붙잡고 노래를 불러보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고양이의 발톱에 짓눌려 꾀꼬리는 캑캑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고양이는 “왜 그따위 캑캑거리는 소리에 다들 환호하는지 이해를 못하겠군.” 비웃으며 꾀꼬리를 잡아먹어 버렸다.
생각해보자. 그동안 미국은 경제 제재를 비롯한 온갖 국제기구를 동원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압박해왔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보다 시종일관 윽박지르기만 했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 대량 살상무기나 이라크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딴 데 있었던 것처럼, 북한을 압박하는 것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고양이의 의도가 애초에 꾀꼬리의 노래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목에 걸린 뼈를 꺼내준 학에게 “너의 멍청한 머리와 긴 부리를 내 목에 넣고서도 그냥 나온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야지”라고 소리치는 탐욕스런 늑대의 모습을 그린 <늑대와 학>, 곰의 공격을 받고 죽을 뻔한 자신을 구해준 일꾼에게 “외투를 만들 수 있는 가죽을 망쳤다”며 오히려 꾸짖는 어리석은 농부를 그린 <농부와 일꾼> 등 널리 알려진 우화들도 만날 수 있다.
끄르일로프는 틀에 박힌 양식을 벗어나 우화의 교훈적인 추상성을 극복해냈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인물을 빗댄 사실성으로 수차례 발표가 금지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등장인물과 빛나는 간결성은 우화를 뛰어넘어 시적인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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