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면에서 미국은 불량국가, 그럼 우리는?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노암 촘스키, 시대의창
‘미국 몽니에 더 열받는 지구’
며칠 전 일본에서 열린 선진 8개국 정상회의(G8)와 관련해 국내 한 언론사의 기사에 나온 제목이다. 미국이 여전히 온실가스 강제 감축에 반대하고 있는데다가, 세계 경제 위기의 주범인 원유와 식량값 급등 문제의 해결책으로 관심은 모은 투기규제도 미국과 영국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환경이나 다른 나라의 경제 위기 따위엔 관심 없다는 투다.
이쯤 되자 G8은 ‘부자클럽’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일찍이 노암 촘스키가 미국을 비롯한 초강대국을 거세게 비난했던 것처럼 어김없이 반 세계화 시위도 벌어졌다.
"나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달라."
누군가 촘스키를 “인류 역사상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여덟 번째 인물”이라고 한 바 있지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촛불시위 이후 국내에서 더 널리 회자되고 있다. 특히 이른바 조중동의 사실 왜곡과 검찰의 PD수첩 수사 이후, 많은 이들의 항의와 저항은 촘스키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더 거세어지고 있다.
“촘스키가 행해온 일련의 작업과 지적 통찰은 결국 ‘표현의 자유’와 ‘진실의 규명’으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요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회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특히 미국은 여러 측면에서 ‘불량국가’ 또는 ‘범죄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자를 더 큰 부자로'-국가의 역할
그의 주장은 매우 단호하고 강도 면에서 아주 강력하다. 권투로 치면 카운터펀치다. 지적 통찰 면에서 매우 적확하고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다.
수천 년 동안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권력의 시녀인 셈.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업계가 엄청난 자금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대중을 개별적인 소비자이자 양순한 생산도구로 전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기업계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대기업이 합법적으로 국민의 몫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즉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정권과 조중동의 여론통제 딱하다
이들은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텔레비전, 신문, 영화, 광고 등을 이용한다. 그들의 주요 목표는 바로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런 필요에 의해 미국의 홍보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과 언론 장악하는 것은 권력의 지상 과제가 되었고,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이루려고 안간힘을 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조선일보의 발행부수 ‘뻥튀기’, 중앙일보의 사진조작, PD수첩 검찰 조사, 그리고 인터넷 매체 압박 등 전방위적이다. 안타깝고 안쓰럽고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이에 대해 촘스키가 내놓은 해결책은 딱 한 가지.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는 거다. “대중의 각성과 감시, 경계 이외에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아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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