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볼프강 라트, 끌리오
하아무(소설가)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 류도 있고, “저 하늘 위 천사도, 바다 밑 물귀신도 떼놓을 수 없는 것(포)”, 혹은 “삶의 왕관이요, 안식 없는 행복(괴테)”이기도 하고 “꿈속의 방(릴케)”일 수도 있다. 유행가 가사나 삼류 인터넷 소설에서부터 만화, 무슨 체험수기류, 그리고 고상한 오페라나 위대한 시인, 소설가의 걸작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한용운)” 마냥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영원하리라 맹세했던 사랑은 변질되거나 또다른 사랑 앞에서 갈등하기도 한다. 바람이 나기도 하고 피우기도 하면서, 끝없이 갈대처럼 흔들린다. 그래서 사랑은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이 책,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는 우리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둘만의 결혼이 매우 일천한 역사를 가진 일임을 상기시켜준다. 고대 그리스는 ‘자유로운 남성들 간의 사랑’, 이른바 동성애가 일반화 되어 있었다. “동성애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라는 플라톤의 철학적 인준까지 받았다. 그러니 최근 많아진 동성애 논란은 갑작스러울 것도 없고, 하등의 이상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
로마시대에 이르러서야 이성간의 사랑이 동성애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이후 기독교에 의해 ‘불변의 진리’가 되어버렸다. 중세의 사랑은 금욕적이고 우울했다.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에는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비로소 ‘일부일처제’라는 발명품이 등장했고, 여성이 ‘집안의 천사’가 되면서 가정에 유폐되었다.
현대는 ‘사랑의 불감증 시대’라고 한다. 웬만한 자극 없이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나는 섹스한다, 그래도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한 사랑의 시대’라고도 한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헤맨다. 직장에서, 도시 여기저기서, 온 나라를 뒤져서라도, 급기야 나라 밖에서 수입(!)를 해서라도 반쪽을 채우려고 한다. 플라톤이 “섹스는 나의 반쪽을 찾아 ‘한 몸’이 되고자 하는 본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인간의 영원한 주제다. 이제는 다양한 결혼과 혼전 동거, 계약 결혼, 동성애,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등 끊임없이 여러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적인 애정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왜일까? 아마도 우리는 항상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사랑과 결혼, 남녀관계는 여전히 시행착오의 여정으로 보인다.
라트의 이 책은, 우리가 사랑의 역사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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