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로이 루이스, 정신세계사
하아무(소설가)
“그래, 왜 아버지를 잡아먹는 패륜을 저질렀는데?”라고 따져 묻지 말자. 책 안 읽는 티 난다.
‘문학은 메타포’라는 명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계사회’나 ‘권력’의 냄새가 나지 않는가. 원제가 <진화인간(The Evolution Man)>이었지만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면서 <먼 옛날 빙하시대에>, <우리는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따위로 바뀐 경위가 자연스레 짐작되지 않는가.
책을 많이 팔아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제목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볼 땐 저자 자신이 붙인 원제보다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란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긴 해도 저자의 의도를 더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책이다. 발상 자체가 신선하고 1960년대에 나온 책답지 않게 통통 튄다. 별다른 작품 활동 경력 없이 신문기자가 쓴 소설 치고는 주제의식도 뛰어나다. 최근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해도 믿겠다.
배경이 된 시대는 200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 그러니까 약 195만 년 동안의 이야기다. 한 원시인 일가족이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발견하며, 적응해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다소, 아니 몹시 황당무계한 소설이다.
이제 막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원시인 가족이 있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으므로 중심을 잘 잡지 못하는 이들의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 희화적이면서도 눈물겹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최초로 불을 발견하고 이를 생활에 이용하려 하지만 큰아버지 바냐는 이를 강력히 비난한다. 바냐는 나무에서 내려온 것이 인간이 한 짓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며 원숭이로 남겠다고 하는가 하면, 불은 인간을 멸종시킬 것이라고 반대한다. 실제로 아버지는 자신이 발명해 자신이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이처럼 아버지와 큰아버지 사이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세계관의 갈등, 즉 진보와 보수를 둘러싼 투쟁의 원천이다.
여기에는 에드워드의 아들 다섯 형제가 나온다. 탁월한 사냥꾼이자 무력을 신봉하는 첫째 오즈월드, 이 소설의 1인칭 화자이자 생각이 깊은 사상가 둘째 어니스트, 돌을 깎고 다듬는 재능이 뛰어나며 아버지와 함께 기술적 진보를 추구하는 셋째 윌버,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벽에 동물 그림을 기가 막히게 그려내는 넷째 알렉산더, 동물을 길들이려고 애쓰는 막내 윌리엄까지. 이들의 성격과 사고방식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인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니까,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느냐고?” 그건 꿈과 죽음을 연결시켜 식인풍습을 만들어낸 작중 화자 ‘나’의 작품이다. 아버지가 자신이 발견한 불을 다루는 기술과 화살 만드는 기술을 대가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려 했기 때문이다. 그걸 잘 이용하면 권력도 쥘 수 있고 큰 사업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 잘 들여다보면 요즘도 아버지를 잡아먹는 사람들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중.고등학생들에겐 억지로 읽는 논술 교재 100권보다 낫다. 꼭 고전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우리 인류의 원형에 대해 ‘탐독’하고 마음껏 ‘상상’해보자. 신난다, 유쾌하다, 공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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