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혼자 있다면 무엇을 할까
몇 해 전 어린이책을 공부하는 어른 모임에서 그림책 만들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제품화된 그림책이 아니라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또 아이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작업이었다.
스토리를 잡고 어떤 그림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계획까지 다 세웠으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림이었다.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라 대책 없이 그림책 만들기를 시작했다는 후회마저 들었다. 결국 그림책을 완성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이야기에 맞는 그림을 기존 그림책들에서 빌려오기로 했다.
나는 딸기를 좋아하는 우리 딸 다은이에게 딸기 귀고리를 하고, 딸기 립스틱도 바르고, 딸기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계획을 했다. 그 때 가장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그림의 본보기가 되었던 책이 바로 사토 와키코의 <집보기>였다.
이 책의 특징은 단순한 그림과 명쾌한 스토리, 그리고 스토리의 반전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 묘사나 섬세한 그림이 없다. 혼자서 집을 보다가 무서움을 느끼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집보기를 소재로 하였으며, 원하던 장보기를 하려는데 비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리는 반전 또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 책의 작가 사토 와키코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로 더 유명하다. 그림책 시장이 형성되었던 초기에 아주 인기를 누렸던 책으로 어린이책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있는 책이 바로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였다. 또 한림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유치부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문장과 그림이라 아이들뿐 아니라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이 특히 좋아했다.
<집보기>는 아이가 혼자 집을 보다가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귀신이 나타나면 어떻게 막아낼지 궁리하다가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이야기다.
이 책의 재미는 집안 곳곳에서 나타나는 귀신의 캐릭터다. 이불 귀신, 변기 귀신, 책 귀신, 연기 귀신, 옷 귀신 등 일상적인 것들이 귀신으로 변모한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기죽지 않고 그 많은 귀신들을 어떻게 처치할지 궁리한다. 냄비로 후려치고, 그물로 잡아채고, 결국 청소기로 빨아들이기까지 온갖 도구들이 동원된다. 그러다 보니 집안은 난장판이 되었고 엄마는 시장에서 돌아온다.
혼자서 집을 보는 이야기들은 많다. 그러나 집을 보는 동안 아이가 느꼈음직한 무서움의 실체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아이가 맞서서 해결하도록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더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훌륭히 보낸 아이들은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낄 것이다. 이 책에서처럼 컴퓨터 없이, 텔레비전도 없이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한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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