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l 닐 게이먼 l 소금창고
아이들은 친구의 물건이 탐나면 그 물건을 얻고 싶은 마음만 가득 차서 물건을 바꾸는 데 목적을 둔다. 또 자기에게 없던 것이 생겼다는 기쁨만 있지 자기 것이 없어졌다는 아쉬움은 없다. 이것이 아이들의 교환방식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커가면서 물건의 가치를 따지기 시작하고 등가의 교환 가치나 더 큰 이익을 남기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소개할 책의 내용은 아이가 금붕어 두 마리와 아빠를 바꾼 이야기다. 사실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신문만 보고 있는 아빠를 금붕어 두 마리와 바꾸고 만다. 금붕어 대신 친구의 아빠를 얻은 나단은 신문만 보는 재미없는 아빠를 배쉬티의 전자기타와 바꾸고, 배쉬티는 블링키의 고릴라 가면과 바꾼다. 블링키는 패티의 애완용 토끼 갈베스톤과 바꾼다.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는 아빠가 없어진 이유를 물어보고는 당장 찾아오라고 한다.
주인공은 여동생을 데리고 아빠를 찾아 친구네 집들을 방문한다. 결국 패티네 집에서 아빠를 찾았지만 아빠는 패티네 토끼장에서 신문에 코를 박고 있다. 아빠는 돌아오는 내내 신문만 보고 있었다.
주인공이 금붕어 두 마리와 아빠를 바꾸었듯이 이 작품에 나오는 아이의 친구들도 아빠를 전자기타와 고릴라 가면, 토끼와 바꾼다. 어른의 눈으로 본다면 쉽게 결론이 난다. 아이들에게 신문만 보는 아빠의 존재는 이런 금붕어나 고릴라 가면, 토끼보다 못한 것이라고. 그러나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자. 친구의 아빠는 우리 아빠와는 달리 어떤 뭔가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다. 아이들은 단지 자기가 갖고 있는 것과 다른 새로운 무엇을 기대했으나 기대 밖으로 아빠는 너무나도 골똘히 신문만 보고 있기에 다른 더 흥미있는 물건과 바꾸게 되는 것이다. 즉, 흥미로운 것을 위해서는 흥미롭지 않은 아빠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는 아빠들의 마음은 상당히 불편해진다. 위의 두 가지 입장을 정리해 보면 어른의 눈으로 보아도 아빠의 존재가치가 장난감보다 못하며, 아이의 눈으로 보아도 놀아주지 않고 관심 가져주지 않는 아빠는 다른 흥미 있는 무엇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은 별로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는 아빠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고 박수를 치는 많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산증인이 아닐까. 이 책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아빠를 무엇과 바꿀 수 있겠니?
/한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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