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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하

정말 정나미 떨어지는 여자, 손예진(주인아)-<아내가 결혼했다>

 

정말 아내는 결혼하고 싶어할까?
___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로 하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휙휙 불어대더니
노란 단풍잎들 모가지를 툭툭 떨어뜨렸다.

단풍잎들이 무작위로 숙청당하는 걸 보며 우리 인생의 가을도 저렇게 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라도 즐겨야 할 것 같아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역할에 잘 어울리는 두 주인공, 그리고...
<아내가 결혼했다>는 밤 11시에 시작해서 거의 한 시경에 끝났다.
손예진의 늘씬하게 패인 등골과 촉촉한 피부가 육감적이었고,
김주혁의 반쯤 내려 감긴 눈이 순진하면서 어벙한듯해서 인물설정이 좋다고 느꼈다.
축구 마니아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
축구와 인생의 관계도 그럴듯하게 연관짓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를 보았다.

결혼은 슈퍼 울트라 구속력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공감되는 점은,
아무리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남자라도 아내와 자식에 대한 소유욕에서 정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연애를 하면서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해야 하고,
양다리를 걸치면 나쁜 년이 되고 이중적인 파렴치한이 되고 만다.

더구나 결혼은 연애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다.
일가친척들을 모아놓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사랑하면서 살겠다는 서약을 하는 형식을 거친다.
그 뒤로 부부가 된 사람들은 내 남자, 내 여자, 내 자식의
강력한 울타리를 치면서 누가 침범이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왜 저렇게 힘들어 할까?'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노덕훈(김주혁)이 술에 취해 나뒹굴고,
말도 안 되는 것을 말처럼 늘어놓는 주인아(손예진)에게 따지고,
집안의 물건을 던지고,
아내의 새 남자를 찾아가 몸싸움을 하고,
주인아의 목을 조르며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리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안 살면 그만이지’ 왜 저렇게 힘들어 할까, 저런 게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꼭 내 핏줄인지 알아보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하고,
내 자식이 맞는지 끊임없이 주인아를 추궁하는 장면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내 아내, 내 자식에 대한 소유욕으로 갈등하는
남자의 전형이 잘 드러났다고 느꼈다.

주인아(손예진)는 도대체 왜?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차츰 생기는 의문 하나.

주인아는 왜 또 결혼을 하고 싶었을까?
결혼을 거부하던 주인아는 노덕훈과 결혼하면서 결혼이 얼마나 좋은지,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는 결혼이란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되었다면서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니 그 사람과도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동거가 아니라 결혼을 하겠다는 주인아의 말을 들으며,
결혼으로 인해 생긴 올가미같은 소유욕을 떨치지 못할망정
또다시 소유의 올가미를 만드는 여성이 정말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 정나미 떨어지는 여자 주인아
시댁에 가서 김치 담그고 제사 지내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또다른 남자의 품으로 드는 주인아에게 결혼이 그렇게 좋았을까?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주중에는 두 번째 남편과,
주말에는 첫 번째 남편과 보내며 집안일은 도맡아 하는 여자,
그렇다고 자신의 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여자,
아무리 슈퍼우먼이라도 모두 잘 해내기 어려운 결혼과 육아의 문제를 쉽게 척척 해내는 여자.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보면 주인아는 정말 정나미 떨어지는 여자다.
이 세상에 어떤 아내도 사랑을 위해 동시에 두 번의 결혼을 감내할 수 없을 것이다.
결혼이 아닌 자유로운 연애라면 몰라도.

왜 두 번째 남편과는 피임을 해?
주인아는 남편이 자꾸 누구 자식이냐고 묻자 그게 왜 중요하냐고 따진다.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주인아는 두 번째 남편과 섹스를 하면서 피임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느 누구의 자식이면 어떠냐는 것은 두 남자와의 관계에서
어느 쪽으로도 편중되지 않는 각각의 사랑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 번째 남편과는 피임을 했다는 것은 이미 형평성을 잃었다.

결혼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막힌 둑이다
결혼으로 인한 남자들의 소유욕을 꼬집기 위한 장치로 두 번의 결혼을 들었다고 치더라도,
동시에 두 남자와 결혼하고 두 남자에게 계속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자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돈 잘 벌고, 예쁘고, 성적 매력도 넘치고, 마니아적 기질도 있고,
어디에 가서도 그런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확신이 드는 여자,
그런 여자가 현실 속에 있다면 과연 어떤 여자일까?

결국 주제의식은 돋보이지만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인물 주인아로 인해
여러 가지 의문점들만 생겨나는 영화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갖고 있는 구속력을 너무 하찮게 취급했다는 느낌이다.
사랑은 흘러가는 대로 좇아갈 수 있지만 결혼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막힌 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