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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하

지는 가을...고독하고 외로운가?-외로움 이기는 비책

“낡아가는 것은 외로움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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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집』, 마틴 워델 글, 안젤라 바렛 그림, 마루벌

가을이 지고 있다.
설악산에 첫 눈이 내렸고, 샛노랗던 은행잎들도 누렇게 말라서 땅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가을이 지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가을을 심하게 탔던 사람들일 것이다.

‘언니, 나 가을 타나봐.’ 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훌쩍훌쩍 울기까지 하던 후배도,
평일에 학교에서 훌쩍 사라져 바람을 쐬러 간다고 하던 교수님도 이젠 가을 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주저앉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저 장면 어딘가에서 봤는데 뭐였지?’ 하는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와 인형 세 개
당장 그림책을 찾아보았다.
나뭇잎들이 집을 덮고 있는 쓸쓸한 풍경, 바로 『숨어 있는 집』이었다.

숲 속 오솔길 옆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무 인형을 만들었다.
뜨개질을 하는 인형, 삽을 든 인형, 가방을 멘 인형이었다.
할아버지는 인형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할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인형들이 창가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했다.
할아버지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인형들을 만들었으나 인형들은 그를 지켜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길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순간, 생기가 돌고
인형들은 낡아갔다.
집도 낡아갔다. 나무가 자라고 수풀이 우거졌다.
담쟁이덩굴에 가려진 집을 누군가 보고 갔고, 다음해 봄이 되어 한 가족이 찾아왔다.
혼자서 외롭게 낡아가던 집은 사람들의 손길을 느끼고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 가족이 숨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어린 딸은 인형을 발견하고 손질을 해주었다.
집도, 인형도, 수풀도 사람의 손길을 받자 이내 생기를 띠고 활기가 넘쳤다.

젊은 할아버지, 알고 보니 아흔 살
이 책을 덮으면서 ‘아, 낡아가는 건 외롭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며칠 전 함양 산골짜기에서 아흔이 된 노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일흔 정도로밖에 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부도 탱탱하고 표정도 해맑았다.
혼자 사는 노인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소가 밝은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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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이렇게 혼자 살아야 한다면...-사진은 경남 의령의 현고수


알고 봤더니 그 집 아래에 할아버지와 나이가 같은 친구 한 분이 살고 있었다.
두 분은 젊은 날 추억거리를 안주 삼아 소주도 마시고, 농사일도 의논하고, 그러다 끼니도 같이 해결하면서 살고 있었다.

두 할아버지가 아흔을 칠순처럼 살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행복하지는 않지만 덜 외롭다는 것이 사람을 달라보이게 한다는 걸.

내가 외롭지 않게 사는 방법
『숨어 있는 집』에 살았던 할아버지가 인형을 두고 떠난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외로움이 달래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을 외롭게 내버려두면 그 사람도 숨어 있는 집이나 인형처럼 낡아갈 것이다.
옆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는 길이 내가 외롭지 않은 길이라는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