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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소설

달맞이꽃(연재2)요절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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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자 갑자기 고요가 찾아왔다. 낯설고 불안했다. ‘빵구'가 뻥뻥 난 성적을 부모님이 알게 될까봐 드는, 그런 불안은 아니었다. 한낮의 폭염처럼 건드리면 폭발해버릴 것만 같아서 스스로 밤의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머리도, 심장도, 고환마저 터져버리는 걸 막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밤새 쌕쌕이를 보던 녀석들도, 폼잡고 담배를 물며 당구공을 꼬나보던 녀석들도, 설익은 시론과 문예사조를 읊어대던 녀석들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게다가 진숙도 무슨 방송국의 구성작가로 취직해서 방학하기도 전에 떠나버린 터였다. 이상했던 것은, 그토록 서로를 탐했지만 그녀가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 것처럼 나 역시 미련이 남지 않았다는 거였다. 물론 성준 선배와의 연애도 끝나고 말았다.

“나의 피도 그 격렬한 흐름 속에서, 결코 천한 사랑으로 역류하거나 되돌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오델로’의 대사로 막을 내렸다.

느닷없이 찾아온 그 모든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밤새 읽고 끄적이고 한편으로 혼자 배회하다 갓밝이가 터오면 비로소 몸을 뉘었다. 정오가 가까워서야 일어나 아점―‘아’침 겸 ‘점’심을 가리키는 두음합성어인 셈이다―을 먹고 집을 나섰다. 청자 한 갑을 사서 학교 도서관까지 걸어갔다.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들어갔다. 영자신문 사설을 훑어보고 두 개의 조간을 본 뒤, 서가로 갔다. 들고 간 책 반납과 책 고르기, 대출은 대략 한 시간 안에 해치웠다. 다시 느티나무 아래의 담배를 즐기기 위해.

맑스에게 포섭되어 입문하기 전이었고 귓등으로 들은 실존주의니 정신분석학, 구조주의 따위를 맴돌고 있었으므로 체계가 없었다. 사르트르를 읽었고 카뮈, 카프카, 미셀 투르니에, 볼프강 보르헤르트, 빅터 프랭클도 있었다. 이영희, 이기문, 전상국, 황석영, 이문열, 조세희, 박상륭 등등 들쭉날쭉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전쟁백서, 범죄백서, 자살백서 따위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내가 가는 길은 온통 지옥으로 변하고 일찍 요절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방향감각 상실이 아노미적 자살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한 뒤르켐은 마치 내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듯했다.

빌린 책을 들고 오후 내내 걸었다. 시내를 걷고, 공단 주변을 맴돌며 걷고, 변두리 달동네를 걸었다. 시장바닥을 헤집듯 걷고, 초등학교에 들어가 걷고, 공원을 걷고, 사람들 구경을 하며 걷고, 간판을 보며 걷고, 땅만 보며 걷기도 했다. 데이트하는 연인을 따라 걷기도 하고, 탁발승을 따라 걷기도 하고, 껌을 파는 소아마비 아이를 따라 걷기도 하고, 외판원을 따라 걷기도 했다. 그리고 식구들과 마주치지 않을 무렵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선뜻 어디 빠져들지 못하고 외곽만 빙빙 돌고 있었던 것이다.

방학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 날 밤새 30, 40매의 원고를 써서 단편소설을 완성한 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내용이었지만 이야기를 다 했는데도 무언가 가슴속에 가득 남아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에 우쭐해지는 한편으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헛헛증. 그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도무지 무언지 알 수 없는,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목적을 눈앞에 두었을 때의 충실감은 어느새 날아가 버리고, 전부를 잃어버린 듯한 비애감만이 엄습해왔다. 원고지를 앞에 두고 수음을 한 뒤에도 가시지 않는 느낌 때문에 나는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알 수 없는 열기에 들떠 어딘지 의식하지 못한 채 한참을 걸었다.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었을 때, 법원 앞 강둑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는 달맞이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으므로 달맞이꽃은 그때가 절정인 셈이었다. 거의 1Km 가까이 노랗게 피어있는 꽃무리가 갑자기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자유로운 마음, 말없는 사랑이 그 노란 꽃의 꽃말이다. 인디언 처녀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한 청년과 사랑에 빠진 인디언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이듬해 마을 축제에서 그 청년이 다른 처녀를 선택하자 절망한다. 게다가 다른 청년이 그녀를 신부로 선택하자 이를 거부하고 만다. 신랑을 거절하는 처녀는 전통에 따라 귀신의 골짜기로 추방을 당하는데, 그녀는 그 곳에서 사랑했던 사람을 일 년 동안 기다리다 죽는다. 뒤에 사랑했던 청년이 골짜기로 그녀를 찾아오지만, 희미한 달빛 아래 꽃 한 송이만이 남아있었다. 남자에게 여자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고 여자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여고생처럼 그런 꽃말이나 기억해두고 있다니. 봄날 개나리꽃 이상으로 흔하디 흔해빠진 꽃을 보고 문득 반가워졌던 자신이 흔해빠진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느낌. 그러면서도 규율과 관습에 자유를 박탈당한 처녀에게 다가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 속에 영혼이 있다.) 영혼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마음은 그 속에 모순이 존재하는 것을 싫어하므로 영혼이 모순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한 심리학자의 책에 나온 말이다. 그때 달맞이 꽃무리 속에서 내 영혼은 나만한 덩치의 흔해빠진 모순을 어깨에 메고 끙끙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영혼의 짐을 연기로 가벼이 날려보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화물이 아니었으므로. 그때 연기 사이로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꽃무리 사이에 품종개량된 아주 큰 꽃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아니, 이 도시를 둘로 가르며 흐르는 강이 물안개를 한껏 피워 올렸는데, 그 때문에 몸을 흔드는 것이 나비인지 품종개량된 꽃인지 확실히 구별할 수 없게 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은 몽롱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내 의식도, 그 날 새벽 날씨도, 어쩌면 그녀의 기분까지도 몽롱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녀는 저만치서 무심하게 흔들리듯 걸어오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별로 주저함 없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옆에 나와 비슷한 자세로 앉았다.

“담배 한 대 줄래?”

(3)편은 5월 11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