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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소설

달맞이꽃(연재3)담배, 자유를 빨아들이는 것...

“담배 한 대 줄래?”

대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담배가 아니라 담뱃불만 빌리는 것이라도 “저……, 실례지만”이란 말을 관용구처럼 붙인다. 전혀 주저하는 마음이 없더라도 그러는 것을 상대에 대한 예의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것을 무시하고 게다가 반말로 맡겨놓은 물건 되돌려 달라듯 말했다.

“독할 텐데, ……괜찮겠어?”

그러나 나는 피곤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이런저런 것을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담배부터 내밀고 한마디 건넸을 때, 이미 그녀는 불을 붙여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뒤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 있었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짧게 뻐끔거렸다.

“급했구나.”

그녀는 살풋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어났는데 담배 생각이 나지 뭐야.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있어야 말이지. 없으면 더 피우고 싶어지는 거, 알지?”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다시 한 번 담배를 물었다. 얼마나 깊게 빨아들였는지 한 번에 1Cm 정도가 타들어 갔는데, 난 그 한 번의 흡입으로 필터까지 다 타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우리 아빠가 보통이 아니거든. 계집애들이 술, 담배가 뭐야, 혹여 그럴려거든 대학이고 뭐고 간에 당장 그만 둬라, 그러실 정도지. 흔적 남기지 않으려고 꽁초까지 말끔히 처리해버렸으니 있을 턱도 없고. 그래서 그냥 나왔지 뭐.”

시원시원한 성격이 말투에 그대로 묻어 나왔다. 가까이서 본 모습에서도 다소 넓은 이마와 긴 생머리, 오래 입어 늘어난 티셔츠 때문에 드러난 목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쉽고 가벼워 보인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밝은 노란색 티셔츠와 오렌지색 치마바지의 색깔 때문이었을까, 티셔츠 목 부분이 너무 많이 늘어나 지나치게 많이 노출이 되어서였을까, 아니면 미니까지는 아니었지만 앉은 자세와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팬티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처럼 짧고 풍덩한 치마바지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에 총기를 담고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이 냉철한 이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듯했지만, 저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색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 아래 깔린 보라색의 그늘과 이따금 미소짓는 입술은 흡사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클로즈업 되면서 풀샷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쉽게 범접키 어려운 고고함과 도도함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진숙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스스로의 세계에 빠져든 동안에는 일체의 틈입과 평가를 거부하는 몸짓과 오연한 눈빛으로 무장했다. 그녀는 담배를 태우면서 그 독기가 온몸을 찌르고 혹은 간질이는 느낌을 탐닉했다. 그 기운이 폐부 깊숙한 곳에서 출발해 뼈와 살과 피의 틈서리를 잘 파고들어, 마침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모든 땀샘으로 잘 빠져나올 수 있게 온몸을 열어젖히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그렇게 담배를 열심히 피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우리 대부분은 고등학교 출옥의 들뜬 기분에 뻐끔거렸고, 겉멋이 들어 검지와 중지 혹은 엄지와 검지 중 어떻게 잡아야 더 폼나게 보이는지 비교하고 연기를 내뿜을 때 턱을 약간 들어 눈을 가늘게 뜨는 연습도 했다.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담배에 열중하고 자신에 빠져드는 방법을 배운 것이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니?”

입을 삐죽이며 준 그녀의 핀잔마저도 발랄했다.

“네가 피우는 담배가 더 맛있어 보여서.”

“그래? 하긴, 넌 담배를 피우는 건지 몰라도 난 지금 자유를 빨아들이는 중이니까…….”

내심 또 한 번의 핀잔을 기대했던 나에게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유를 받아들이는 중이라? 그거 괜찮네.

“내 자유는 아직 미완이거든.”

“미완의 자유? 그건 어떻게 완성되는데?”

그녀는 필터만 남은 담배를 돌멩이에 비벼 껐다.

“혁명적으로.”

“혁명적으로?”

(4)편은 5월 13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