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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소설

달맞이꽃(연재4)여자는 정신적 사랑을, 남자는 포르노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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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유는 아직 미완이거든.”

“미완의 자유? 그건 어떻게 완성되는데?”

그녀는 필터만 남은 담배를 돌멩이에 비벼 껐다.

“혁명적으로.”

“혁명적으로?”

그 말을 할 때 그녀는 매우 조숙해 보였다. 적어도 나보다 두어 살 위인 것 같아 보였지만 굳이 그런 것을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재미없는 이야기 그만하고, 커피 마시러 가자.”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온 담배연기가 물안개와 몸을 섞는 걸 확인한 그녀는 팔짱을 걸어왔다. 우리는 미팅을 한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이름이나 취미, 좋아하는 음악 따위를 묻지 않았고 하고 싶은 걸 했다. 어쩌면 더 친한 사이거나 아주 깊은 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자유로운 마음을 가르고 말없는 사랑에 맺힌 이슬을 털며 둑길을 걸었다.

“자판기 말고. 커피 맛이 좋은 델 알고 있거든. 거기로 가자.”

그녀가 손을 잡아끌었다.

“이 시간에 문 연 데가 있냐?”

그녀가 더 세게 잡아끌었다.

“문 안 열었으면 어때? 우리가 열면 되지.”

나는 이제 막 어두운 골방에서 나온 터라 다시 어두운 곳에 들어가기 싫었다. 커피 맛이 아무리 좋아도 달맞이꽃과 물안개 오르는 둑길만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큰 가지는 그랬지만 다른 가지로는 엉뚱한 생각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한 판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여자는 정신적인 사랑을 꿈꾸고 남자는 포르노를 꿈꾼다고 했던가. 아마도 마음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일 것이다. 그곳 강둑은 안온한 경치와 새벽 산책로로 이름나 있었지만 밤이 되면 정반대의 일들이 자주 일어나 뉴스에 오르내리곤 했다. 얼마 전에도 애정 행각을 벌이던 남녀와 지나가던 사내들 사이에 시비가 일어 칼부림까지 부렸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였다. 이럴 때 사내들이란 겉으로는 “쯧쯧 다른 데 다 놔두고 그런 곳에서 재미보려고 하다니. 당해도 싸다 싸.”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사내처럼 달맞이꽃 속에서 여자를 안았을 때의 전율을 상상하고 꿈꾸기도 한다.

내 마음이 두 갈래 길을 만난 지점이고, 나는 달맞이꽃 사이에 더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질 나쁜 포르노 비디오에서 보았던 장면들, 조명을 밝히고 섹스하기를 고집하던 진숙과 뒹굴던 장면들이 나와 그녀의 얼굴로 바뀌어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 무의식의 뒷터로 흘러갔다. 순간, 나는 그녀에게 죄를 지은 기분이 되어 순순히 그녀를 따라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야, 기분 좋다아."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담배도 맛있게 피우고, 친구도 생기고."

그녀가 다시 내 팔을 잡아끌었을 때 나는 당황해서 갑자기 멈추어 서고 말았다. 그녀의 가슴이 팔꿈치 위쪽에 닿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주 부드러우면서 탄력적이었는데, 그때까지 그 어디에서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국민학교 때 가슴이 나오기 시작한 여자애들이 갓 착용하던 브레지어 끈을 뒤에서 잡아당겼다가 놓는 장난을 치다 우연히 스쳤던 그 가슴과는 확연히 달랐다. 또 흘낏 본 젖을 물리는 이웃집 새댁의 가슴이나 포르노 여배우들의 희거나 까만 가슴, 손가락으로 젖꼭지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했던 진숙의 작고 아담한 가슴과도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브레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브레지어의 소재가 주는 제법 두터운 그런 두께가 느껴지지 않았다. 기껏 면 소재 티셔츠 한 장만이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것인데, 실제 그 느낌은 그냥 맨살에 닿은 듯한 느낌이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고 동시에 식은땀이 흘렀다. 흘깃 보았을 때 얇은 티셔츠 위로 가슴의 정점이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왜 그래?”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더 기울이며 물었다.

“아, 아니야. 가자.”

(5)편은 5월 14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