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물질화된 영혼, 그 또다른 자아
≪골렘≫, 구스타프 마이링크/책세상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인기있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가 골룸이다. 선과 악의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 그것들이 자기 속에서 서로 싸우는 캐릭터로 나온다. TV에서 개그맨들이 패러디 소재로 삼아 눈길을 끌었지만, 워낙 인간의 속성을 잘 표현한 인물이어서 많은 공감을 샀다.
그 골룸의 유래는 중세 유럽 유대인들에 의해 탄생된 ‘골렘’이다. 오래 전부터 유대인들은 위기의 순간에 초인적인 괴물 골렘이 나타나 민족을 구원해준다고 믿었다. 전설에 따르면 17세기의 유명한 랍비 유다 뢰브가 유대인을 탄압하는 광적인 기독교인들에 맞서 골렘을 만들어 저항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괴물이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그를 다시 흙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이 골렘은 ≪반지의 제왕≫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에 출몰하였다. 저 유명한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시 <골렘>과 미국 판타지 소설가인 데이비슨의 ≪골렘≫ 등이 있다. 1920년 독일에서 만든 영화 ≪골렘≫도 유명하고, 골렘 전설에 영향을 받은 작품은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 수없이 많다.
골렘이 등장하는 여러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마이링크의 ≪골렘≫이다. 어둡고 미로 같은 게토 지역에 감도는 성스러움과 악이 섞인 기묘한 분위기.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물질화된 영혼, 즉 자신들 안에 존재하는 또다른 자아를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롭게 풀어냈다.
그렇다면 사람들, 아니 우리 영혼 속에 있는 골렘은 어떻게 그 존재를 드러내는가. 마이링크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제시해 두었다. 주인공 페르나트가 자기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뇌하는 곳, 바로 ‘출구 없는 방’이다. 암울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게토 지역과 정체 모를 어떤 존재에 대한 공포, 그리고 텅 비어 있는 공간이 곧 ‘출구 없는 방’이다. 그곳에서 골렘의 존재가 형성되는 것이다.
소통이 배제된 채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해리성정체장애’, 소위 ‘다중인격장애’가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마이링크는 이에 대한 실마리도 제시해 두었다. 골렘이 ‘이부르’라는 첫 글자 ‘I’가 훼손된 책을 페르나트에게 가지고 온 것. ‘이부르’는 정신적 자기 실현을 뜻하는 말로, 그 첫 글자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해답인 셈. 다시 말해 자신과 또다른 자아가 진정한 만남을 이뤄 하나가 될 때 자기 실현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1915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갈수록 사람들은 더 물질화되고 분열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내 안의 골렘을 발견하고 그와 정면승부를 펼쳐보시라.
하아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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