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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헐리우드 여배우와 멕시코 작가의 격렬한 사랑

자유를 앞세운 미국의 욕망과 파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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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섹스를 한다>-카를로스 푸엔테스, 자작나무

하아무(소설가)

제목이 선정적이다. 내용도 나름대로 선정적인 부분이 많다. 그런데 섹스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다. 이렇게 되면 선정성보다는 정치성이 더 부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적인 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든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도 않는다. 시종일관 침실에서 뒹구는 장면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얘기는 간단하다. 헐리우드 여배우 다이아나와 멕시코 출신 작가가 눈이 맞아 한달하고 3주 4일 동안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는 거다. 물론, 두 사람은 유부녀 유부남이다. 책 표지에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대로 이 설정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쓴 것이다. 여배우 다이아나는 장-뤽 고다르의 유명한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나온 진 셰버그고, 그녀의 남편은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다.
그래서였을까. 로맹 가리는 <새들은…>에서 진 셰버그를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창녀로 그린 바 있다.

그런데 왜 ‘미국’이 섹스를 하는가? 원제는 <다이아나 혹은 외로운 사냥꾼>인데, 역자와 출판사는 왜 미국으로 하여금 섹스를 하게 만든 것일까? 정답은 헐리우드 여배우가 미국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숭고하고 박애주의적이며 자유를 추구하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몰입시키는 한 여자이면서도 잔인함이나 파괴성을 지니고 있는 다이아나의 실제 내면”이라는 진술을 읽다보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이라크전쟁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을 부추기는 미국의 이중성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써진다.

다이아나는 FBI의 더러운 중상모략의 희생물이 되어 얼마 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작가는 다이아나의 사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한경쟁과 패권주의, 위선으로 가득찬 미국 사회를 질타한다. 결국 겉다르고 속다른 백인과 흑인간의 인종 갈등에 의해 의한 죽음임이 밝혀진다. 미국내 반흑인 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FBI가 조작한 스캔들에 의한 것. 에로틱한 이야기 속에 정치 팸플릿보다 더 신랄한 비판이 깔려 있다.

‘소설의 혁명’을 부르짖던 ‘붐’ 소설 이후 등장한 대중화 경향이 이 작품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누군가. 옥타비오 빠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중남미문학의 3대 작가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중남미의 제임스 조이스’ 아닌가. 이 소설은 그리스 신화에서 이제는 고전이 된 여러 영화에 이르는 풍부한 지식과 예리한 시각, 그리고 치밀한 심리분석 능력까지 유감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특히 푸엔테스는 시간을 포함해서 인간을 둘러싼 애매모호함과 혼돈 같은 테마를 즐겨 다루었는데, 이 소설에도 그와 관련된 문제가 언급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오랫동안 살던 원주민과 들소(버팔로)들은 백인들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백인들마저도 무한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머지 않아 그곳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운명이고, 계속 그 시간을 그들 스스로가 앞당기고 있음을 우리는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 PS(1)-미국은 아직도 격렬한 섹스를 하고 있으며, 더 많은 섹스를 요구하고 있다.
* PS(2)-태그:광우병, 미친소, FTA, 신자유주의, 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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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 자작나무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