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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술 담배 이혼 마약에 찌든 프랑소아즈 사강은...

삭막하게 아름다운 감수성, 병적인 삽화
《사강의 환각일기, 독약》, 프랑소아즈 사강 글, 베르나르 뷔페 그림/문예출판사

하아무/소설가

 


# 사강 =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을 써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사강의 책이다. 18세에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을 완성해 일약 ‘스타 작가’가 된 사강. 하지만 그녀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다. 술과 담배 속에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 도박과 낭비, 무절제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녀가 22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모르핀을 맞았는데, 그만 중독되고 말았다. 모르핀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특수병원에서 보낸 9일 동안 사강은 일기를 썼다. 그게 바로 이 책이다.

마약 기운 때문에 환각 속에 허우적대는 그녀, 환각상태를 이겨내려는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 그 과정에서 경험한 공포와 신체적 증상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마다 번득이는 그녀의 감수성. 이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악마’라 하지 않았던가. 시인 이가림이 “삭막하게 아름답다”고 한 이유를 알겠다.

 


# 뷔페 = 이 책은 사강만의 책이 아니다. 사강만큼이나 일찍, 약관 20세에 세계적인 화가 반열에 올라선 뷔페가 삽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대화가가 그린 삽화인 만큼 그의 특질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신경질적이면서 거침없이 찔러대는 선, 황량하고 지극히 비정적인 선, 강렬하고 비통한 먹선, 견고하고 강마르며 창과 같은 선들. 김영태 시인이 뷔페의 그림을 보고 “나무로 비유하자면 겨울 나목이고, 감각을 예로 든다면 골격만 앙상하게 드러낸 삭풍의 을씨년스러움이며, 꿈, 사랑, 유희, 리듬 같은 인간의 희노애락의 총체를 무시한” 그림이라 한 이유도 알겠다.

그런데 뷔페의 날카로운 선은 병적이면서도 유혹적이다. 그의 “펜이 날카롭게 긁어대는 아픔이 아름답다”는 역설이 이 책에 나타나 있다.(지난달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뷔페전시회가 미술 애호가들의 폭발적 관심을 끈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만남 = 환자로서의 사강과 역시 병적인 뷔페의 만남은 필연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만남이 “이상적인 대화의 이중주”라는 느낌은 한두 사람만의 생각이 아닌 것으로 봐서.

그런데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다. 사강은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 자살에 대해 언급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죽음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 그러면서 “육체는 뜻대로 다룰 수 없는 노릇이니까 자살이란 슬프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페이지에 기괴한 모습의 해골을 그려 넣었던 뷔페는 1999년,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병든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며 사강이 썼던 구절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