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마른 늪에서 고기 잡기
《죽음의 한 연구》, 박상륭/문학과지성사
하아무/소설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는 실제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었던 체험과 관찰한 사실들을 엮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훌륭한 화답이 바로 《죽음의 한 연구》가 아닐까. 그 ‘어떤’ 상황이 설령 죽음일 지라도 말이다.
박상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여 년 동안 이 책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권하여 보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제목에 끌려 스스로 선택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개 서너, 너덧 장 읽다가 책꽂이 장식용 책이 되어버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뭔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너무 장황하고 암호 같은 문장에 그만 질려버렸다”는 거였다. 실제로 이 소설은 매우 독특하고 낯설고 난해하다.
거의 500여 쪽에 달하는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소설에서 줄거리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갯마을에서 창녀 어머니와 살던 아이가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어떤 중의 불머슴이 되었다. 중은 사내를 유리라는 마을로 수도하러 보낸다. 사내는 유리로 가면서 스승인 중을 죽이고, 그 뒤 존자라는 사내와 외눈 중도 죽인다. 사내는 유리의 촌장이 되기 위해 ‘마른 늪에서 고기를 잡는 수행’을 한다. 그러나 사내는 살인죄 때문에 유리의 판관인 촛불 승에 의해 처형되는데, 스승 밑을 떠나 죽음을 완성하기까지 꼭 40일이 걸렸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사내의 살인 행각은 ‘구도적 살인’이다. 임제선사가 말한 바, “안팎으로 만나는 자를 모두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할 수 있다”는 권유를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도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사내가 살인인들 마다할 리 없고, 그 결과가 처형이라 한들 또한 견디지 못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이 무겁디 무거운 이야기가 요즘처럼 가볍디 가벼운 시대에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악마가 프라다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자기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마시멜로를 먹으며 마시멜로 이야기를 베끼거나 받아쓰기도 하고, 호모 엑세쿠탄스 운운하며 녹슨 칼 휘둘러 제멋대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처형해대는 시대에 말이다.
이에 대해 소설은 답한다. 무겁든 가볍든 존재가 있으면 죽음이 있는 법이니 죽음의 완성을 통해 존재의 완성이 가능하다고, 지혜는 죽음의 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여기에 또 문학평론가 고 김현 선생도 한마디 거든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황폐한 마른 늪에서 고기 잡을 생각도 않고 지낼 작정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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