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이라도 꾀어 임신해야 할 판!
<사양> 다자이 오사무 l 소화
워낙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 자신의 삶이 극적이었다. 건평 245평, 2층 대저택에 하인까지 30명이 넘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막내아들이었기에 무관심 속에서 자랐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란 독백은, 그래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집안의 몰락 이후, 그는 평생 4번의 자살기도를 감행했다. 첫 자살기도는 고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술집 여자와 함께 시도했으나 여자만 죽고 말았다. 그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내내 불면증과 폐결핵, 피해망상증까지 앓으며 고통 속에 살았다. 그의 아내가 간통 사건을 일으킨 후, 38세에 비서 일을 해주던 여자와 강물에 투신해 드디어(!) 성공했다.
"우익이여, 일어나라!"는 취지의 말을 남기고 할복자살한 것으로 유명한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그런 다자이를 벌레 보듯 싫어했다.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고, 시골 출신인 주제에 하이칼라 취미를 가졌다, 눈물과 콧물을 짜내는 유약한 낭만주의자 이미지가 아니꼽다, 문체가 약해빠졌다는 거였다. 다자이의 소설이 미시마에게는 궁상스레 비쳤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독자들이 다자이의 소설을 읽고 그의 묘를 찾는다.
그의 독자는 우리나라에도 많다. 그의 '광팬' 중에 작가 한수산 씨도 있는데, 다자이를 소재로 <날개와 사슬>이란 단편소설도 썼고, 산문에도 자주 인용해 열혈팬임을 드러냈다. 그가 요약한 <사양>의 내용은 이렇다.
'2차 대전 이후 몰락한 귀족 집안의 우아한 어머니가 있었고 어느 밤길의 먼 불빛 같은 여인인 딸이 있었고 전쟁에서 돌아와 약물 중독 속에서 헤매는 허무한 청년인 아들이 있었다. 그 뿐이다. 몇 개의 사랑, 어머니의 죽음, 점점 비참해지는 몰락한 귀족의 생활에 대한 참담한 묘사들이 있을 뿐이다. 아들은 결국 자살하고 딸은 스스로 허무한 사랑을 선택하여 아내 있는 남자의 아기를 가지며 사랑을 완성한다. 그것뿐이다.'
<사양>은 자기 집안 몰락과 밀회를 즐기던 여자의 일기를 묶어 쓴 사소설이다. 2차 대전 이후 스러져가는 한 낡은 시대의 허무와 절망이 담겨 있다. 평자들이 말하는 '자학적, 자기혐오의 고백을 기조로 한 속죄의 니힐리즘'의 세계인 것이다. '지는 태양'이란 뜻을 담은 이 소설 때문에 '사양족(斜陽族)'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패배의식과 절망이 지배적인 상황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끈은 놓치지 않는다. 딸이 유부남의 아기를 갖는 장면이 그것이다.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작년(2007년)까지만 해도 이랬다. 경제성장과 함께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던 시점에 터진 IMF사태, 기대를 걸었던 정권의 턱없이 낮은 지지율, 불안과 절망을 오가게 만드는 국내외 정치와 경제 상황 등등. 2007년 새로운 해가 떴지만 여기저기 '지는 태양'이 눈에 띈다. 정말이지, 길가는 유부남 꾀어서 임신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하아무(소설가)
PS. 그런데 요즘 나라꼴을 보고 있자면 해는 벌써 져버렸다. '사양(斜陽)'이 아니라 '사양(死陽)'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태어났지만 정말이지 (막말로) 궁둥이 걷어차서 나온 구멍으로 도로 처넣고 싶은 심정이다. (미안하다. 글쟁이답게 표현하지 못해서. 그러나 다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일지 않는다.) 이제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사죄하는 담화문을 발표한다 해도 곧이들을 사람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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