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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불 구경, 싸움 구경, 사람 구경...그 중에 제일은?"

미련스럽고 고집스러운 우리 토종문화의 힘

 

<꾼>-이용한, 실천문학사

꾼 [명사]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꾼 [접미사] 어떤 일을 직업적·전문적 또는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임을 뜻함.

"재미는 없겠다. 어,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명사형으로 붙였지만 내용을 들춰보면 접미사로 쓰이고 있다.
약초꾼, 석이꾼, 송이꾼, 석청꾼, 초막 농사꾼, 소금꾼 등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꾼’들과는 다르다. 술꾼, 노름꾼, 낚시꾼, 사냥꾼, 구경꾼 등등.
요즘에는 누리꾼이라는 말도 생겨나 많이 쓴다.

제목은 간단한데 제목 위 아래로 붙은 말들은 간단치 않다.
출판사의 자체 시리즈물인 이 책은 시리즈명이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고, 제목 아래 부제가 ‘발품을 팔아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길다. 된장 냄새 팍팍 난다. 그런데 재미는 없겠다.
토종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힘들고 고단한 일일 텐데 재미있을 리가 있나.

그런데 아니다. 재미있다.
하늘이 내린 약초, 산삼을 받는 심메마니, 30년 동안 절벽에 매달려 석이버섯을 따는 석이꾼, 바위 틈에서 나는 토종꿀을 따는 석청꾼, 사천과 남해에서만 볼 수 있는 죽방렴 어부, 산에서 매를 받아 부리는 매사냥꾼 봉받이.

남들 다 쉽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그냥 맞춰 살지만, 이들은 미련스럽게 혹은 고집스럽게 옛날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수십 년 된 그들의 인생이 담겨 있어서 재미가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책이 다 무협지는 아니다"

원래 빨리 뛰어 가다보면 못 보고 지나치는 게 많다.
몇 년 전부터 속독이 성행하고 그런 학원까지 생겨났는데, 빨리 읽다보면 놓치는 것이 많기 마련이다.
빨라야 하는 것도 있다. 달리기는 빨라야 하고, 무협지 정도라면 빨리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달리기 선수가 될 수는 없고, 세상의 수많은 책들이 다 무협지는 아니다.
천천히, 여유 있게, 즐기면서, 충분히 음미할 수 있어야 깊이가 생긴다.

하동 사는 최영욱 시인(평사리문학관 관장)의 시 <취한 날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산그늘 길게 내린 물가로 가면
올망졸망 노래하는 물가로 가면
수양버들 가만가만 살랑대는데
이내 몸도 살랑대며 떠다니는데
접동이 노래하면 꽃핀다 하나
내 꽃피울 땅 한 뼘도 어디 없으니
-최영욱, <취한 날에> 중 일부
 
"불 구경, 싸움 구경, 사람 구경이 진짜다"

바쁘게만 사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이런 경지를 느낄 수 있겠는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드라마나 코미디, 쇼 오락 프로그램은 가짜가 많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돈 놓고 돈 먹기다.
그런 것들과 달리 평범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런 게 진짜다. 진국이다.
구경 중에 제일 좋은 구경이 불 구경, 싸움 구경, 그리고 사람 구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기계문명을 신봉하는 사람들, 혹은 생산성을 향상시켜 돈을 많이 벌수록 삶이 윤택해진다고 믿는 사람들 눈에는 그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구식’으로 보이고 경쟁에서 뒤처진 ‘낙오자’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미련스러움이나 고집이 있었기에 우리의 생활문화가 일부나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문화의 힘이다.

꾼(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 상세보기
이용한 지음 | 실천문학사 펴냄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 급박한 세상에 아직도 미련스럽게, 여전히 고집스럽게 고유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만의 맛과 멋이 배어있는 생활풍속과 그것을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책. 심메마니, 약초꾼, 석이꾼, 석청꾼, 남사당 앞쇠 등 모두 13가지의 서로 다른 업과 16명의 꾼에 대한 삶을 진솔하게 소개했다. 아울러 토종지기의 삶이 낳은 몇 가지 토종문화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