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살에 갇혀 길을 잃었네 ; 은어
문순태의 소설 <피아골>에서 까치이모가 주인공 배만화에게 만화의 어머니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있지요.
“몸매는 섬진강 은어 모양 나긋나긋허고, 양귀비 닮은 버들눈썹에, 얼굴은 달덩이 같고, 입술은 용머리꽃 같고……”
할 때의 그 은어인데, 요새 양식하는 은어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 구분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머루, 으름, 다래, 구지뽕 열매, 장구밤, 아그배, 고욤 등
이번에 제가 소개할 시들은 자연풍광을 아름답게 그린 시들이에요.
그런데 사실 자연풍광을 노래했더라도 그것을 배경으로 하거나 재제로 삼았다 뿐, 주제는 제각각인 경우가 대다수이지요.
앞서 역사를 담고 있는 작품들 위주로 철쭉 오라버니가 소개를 했지만, 자연풍관을 담고 있으면서도 역사적 인식을 전제로 한 작품도 많지요.
전통적 한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고,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경우도 있어 사실상 하나로 묶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머루, 으름, 다래, 구지뽕 열매, 장구밤, 아그배, 고욤이나 세잎 약지꽃풀, 할미꽃, 족도리풀, 벌깨동굴, 대사초, 까마귀오줌통, 노랑꽃 만병초, 미치광이풀, 붉은 말뚝버섯이나
개똥지빠귀새, 살모사, 긴꼬리제비나비, 들신선나비 따위를 모두 아울러 동식물이나 생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어찌 없겠어요.
안 그런가요?
"하동포구 80리에 빈 모래사장만 눈부시고"
발자국도 없이 쫓겨 온 사나이
눈부신 햇살에 갇혀 길을 잃었네.
무슨 알뜰한 옛사랑의 맹세도 없이
三千浦 아가씨의 설운 눈물도 없이
덧없이 부서진 마음 모래알로 빛나는데
어디서 누가 花無十日紅의 옷소매 잡는가.
눈부신 한낮이 길게 누워 있는 나루터
主人 잃은 빈 배만 흔들리는데,
눈물을 씹어 봐도 한숨을 씹어 봐도
쓴 맛 단 맛 알 수 없는 설운 내 팔자
하동포구는 아직도 울고 싶은 곳이더라.
하동포구는 아직도 사나이 옛정이 목매는 곳이더라.
-문병란, <하동포구> 부분
삼한시대에 하동을 한다사(韓多沙, 큰 모래밭)로 불렀다는데, 그 아릿한 정취가 빈 모래사장과 함께 눈앞에 선연히 그려지네요.
마지막 부분의 “무심한 햇살만 남아 있더라./ 빈 소줏병만 남아 있더라./ 환장하게 환장하게 눈부신/ 모랫벌만 지글지글 타더라.”는 장면에서는
내 비록 은어의 몸으로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가 되겠지만 지글지글 타는 모래사장으로 올라가 지친 사나이의 등이라도 쓸어주고픈 마음마저 생겨났답니다.
저문 강물을 보라.
강물 위에 절을 지어서
그 곳에 죽은 것들도 돌아와
함께 저무는 강물을 보라.
강물은 흐르면서 깊어진다.
나는 여기 서서
강물이 산을 버리고
또한 커다란 절을 버리기까지
저문 강물을 쉬지 않고 볼 따름이다.
-고은, <蟾津江에서> 부분
그래요, 강물은 쉼없이 역사와 함께 흐르면서 그 나름의 치유 능력까지 겸비하게 된 모양입니다.
역시 강물이 역사와 비견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오늘 평사리 이 넉넉한 들을 빠져나오며
역사는 이긴 자의 힘이고
패배자의 군소리라는 것을
저 들녘 끝 떠도는 쓸쓸한 바람이 일러주었네.
-송수권, <平沙里行> 부분
강을 따라 가면서 보이는 것은 비단 사람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모래사장만은 아닙니다.
벚꽃도 매화도 사람을 휘어잡고 놓아주지 않아
이제는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지만 봄이 되면 벚꽃도 매화도 온통 사람을 휘어잡고 도무지 놓아주지를 않네요.
강 건너 매화밭에 발목이 걸렸다가
섬진강을 맨발로 건너왔다
(……중략……)
여기서 시집 가고 말아버리겠다는 것인지
부풀어오른 가슴 다 열고
섬진강 물면경에 얼굴을 대고 연지곤지
찍다가
흰 분곽을 엎질러 버렸다
불났다 흰불,
심봤다 처녀의 허리 낭낭 벚나무 한 짐이다
-강희근, <벚꽃, 불 났다> 부분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문인수,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전문
온 천지간에 불, 그것도 흰 불이 났으니 난리가 났어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요.
게다가 동백 지고 매화가 폭발을 하고, 온 산하가 교향곡을 협연하며 섬진강마저 나서 소리를 풀어놓으니, 또한 잔치도 이런 잔치가 없네요.
열두 폭 세운 돛은 가락에 신명이라
봄에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여기에만 오면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도 겨울대로 사람을 취하게 하는 묘약이 있답니다.
가을 섬진강을 따라가려면
잠깐의 풋잠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중략……)
여기서는 길도 섬진강을 따라가므로
갈 길 바쁜 사람도 홀연 마음 은근해진다
나고 죽는 일이 괴롭다면 내처 잠들어
남해 금산 바닷물에 처박힐지 모른다
-강연호, <섬진강에 지다> 부분
풍성히 밀려드는 보름 사릿물
열이레 장 배 인심으로 떠
어영차 저영차
뱃노래 흥에 겹고
열두 폭 세운 돛은 가락에 신명이라
-최영욱, <하동포구-옛날에 대한 새김 1> 부분
조선시대 대학자 정약용 선생도 1780년에 두치진(豆巵津, 지금의 화개)을 돌아보고
“따뜻한 백사장에 이제 막 장이 서니/ 부엌마다 연기 나고 술과 고기 벌여 있네// 언덕엔 마소가 서로 얼려 희롱하고/ 포구엔 돛배들이 엮은 듯이 총총하네”
하며 흥성한 풍광명미(風光明媚)를 노래한 바 있지요.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때가 몹시 그립기도 하답니다.
왠고 하니, 그때는 제 날렵한 몸매에 반한 뭇 사내들이 찾아올 만큼 인기가 좋았고, 저 역시 그들의 혀끝에서부터 마음까지 녹여내었으니 세상살이 하면서 그 재미도 제법 쏠쏠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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