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대로 놔두라! ; 어처구니
나는 어처구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어처구니’는 주로 ‘없다’는 말 앞에 쓰인다.
사실 그런 상황 자체가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나, 어처구니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처구니는 당연히 있다.
어처구니는 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 내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런 말을 만들어낸 격이 된 당 태종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따지고 들면 기와장이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들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궁궐만을 짓는 기와장이들 같았으면 어련히 알아서들 어처구니를 세웠겠지만, 서민들의 지붕을 올리는 데 익숙한 그들이 ‘깜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기와장이들이 밤마다 귀신이 나타나는 꿈을 꾸는 황제의 입장을 이해할 수만 있었어도 잊어버리지 않았을 수 있겠지만,
날마다 고된 막노동에 시달리다 머리만 기대만 잠에 곯아떨어지는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는 아주 못마땅한 것이 사실이다.
헌데 내 처지도 참 어처구니가 없는데, 세상에는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많고 많았다.
내 문제야, 사람들이 내가 존재하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은근슬쩍 모른 체하는 것이지만,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존재 기반을 흔들고 송두리째 없애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오늘 내가 말하려 하는 건 환경 문제다.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 수질 오염, 생물 종의 감소와 같은 환경의 위기는 빈곤, 불평등 그리고 전쟁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특히 지나친 도시화와 산업화는 생태계의 순환질서를 파괴해서 우리의 생명에 대해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도대체 환경을 세워놓고 환경을 이야기해야지, 환경을 없애면서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나는 적어도 없는 걸 있게 해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바탕에서 문학생태학이란 용어도 등장하였다.
이는 문학이 생태계의 회복에 일정의 기여를 해야 한다는 제안이기도 하다.
최근 섬진강과 지리산을 중심으로도 역사적 의미를 두거나 자연을 찬미하는 작품보다 환경과 생명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작품이 많아졌다.
노고단 구름바다에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피아골 붉은 단풍 이로다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반야봉 어여쁜 낙조에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섬진강 맑은 흐름이로다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벽소의 밝은 달은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불일폭포 흰 기둥위에 솟고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세석평전 철쭉바다에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연하는 선경이구나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천왕봉에 해 떠오른다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칠선계곡이 모두 다 무릉도원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아아 지리산 지리산
세계 十勝 남조선의 어머니
푸른 연봉에 구비 구비 서리인
신령한 전설들을 그대로 놔두라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김지하,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 전문
섬진강은 이미 상처다. 분노다.
날선 분노 위로 철없이 넘실대는 바닷물의 잔치
달님은 내 모른다 청승스레 웃고
지리산의 듬직함도 어쩔 수 없다
(……중략……)
뙤약볕 아래 소곤거리는 은어떼의 살가운
물결을 따라 발길질도 하고
몽둥이도 내리치던 섬진강을 돌려달라
은어떼도 돌려달라
섬진강, 저 강 죽으면 누가 섬진강을 노래하랴
-최영욱, <섬진강, 그 청정한 가슴에 쇠말뚝을 박지 말라> 부분
매우 직설적이고 단호한 어조다.
민중문학 시대 이후로 이처럼 강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표출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거니와 그 절박함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환경문학은 양적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저 강 죽으면 누가 섬진강을 노래하랴
아울러 환경문학은 단순한 고발문학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질적 전환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고 또 그것을 이루어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연과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삶을 창출해 보여주어야 한다.
저 아름다운 강과 산을 없애고 병들게 하면서 환경을 위하는 시늉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건설업자들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대통령까지 온 국토를 파헤치려는 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나, 어처구니의 존재를 더이상 부정하지 말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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