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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저렴한 인생들'의 유쾌한 이야기-홍합

‘밑바닥 인생’의 달큰하고 시원한 맛
『홍합』, 한창훈, 한겨레신문사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의 위력은 세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그런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려는 돈 있고 힘 있는 재력가나 위정자들의 위력이 센 것이다.
선거 때마다 지방분권 시대 어쩌고 지역발전 운운하는 소리는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정은 글동네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등단이란 걸 하고 제대로 작품 발표할 지면을 얻으려면 아예 서울로 삶터를 옮기거나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글쟁이가 의외로 많다.
그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인터넷으로 인해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실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한창훈은 그런 걸 싫어하는 작가다. 어디 기댈 생각도 하지 않을뿐더러 스스로 촌놈임을 자처하고, 또 평소 행색도 그에 걸맞게 해 다닌다.

그의 소설도 꼭 그대로여서, 바닷가나 섬을 삶터로 삼아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저렴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름이 있지만 자신의 이름보다는 ‘○○댁’이나 ‘누구 엄마’로 불리는 여성들, 그들은 살아가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이나 말썽쟁이 아들을 혹처럼 달고 살아가간다.

그들의 삶은 고달프지만, 그렇다고 꼭 고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나같이 억척스러운 그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불행한 사람들’로 비치거나 동정어린 눈빛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흥미로운 일들로 채워져 있거니와, 때로는 자신을 옥죄는 가부장제를 뛰어넘으려는 당당함도 드러난다.

이처럼 한창훈의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는 잊혀져가는 주변인들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재벌이나 전문직을 중심으로 도시인들이 등장하는 ‘삐까번쩍’한 드라마들 사이에 조그맣게 끼어 있는 ‘인간극장’ 같은 소설이랄까.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삶의 모습은 달큰하면서도 시원한 홍합살의 맛을 닮았다. 여럿이 모여 앉아 삶은 홍합을 까먹는 소설 속 장면은 언제 보아도 재미있다.

“참말로 아무리 봐도 똑같이 생겼네.”
간밤에 보던 것과 단순 비교하는 측이다.
“어째 이 불쌍한 것을 이렇게 모지랍스럽게 쌂어분다냐. 얌전히 있는 것을 끄집어 올려, 패대기 쳐, 불로 쌂어, 빤스 벳겨, 아이고 불쌍한 거.”
측은지심 측도 있다.
“제미, 뭐 묵겄다고 쫙 벌리기는.(…)니미, 터럭도 드럽게도 많다.”
이렇듯 세심한 관찰형도 있었다.

요즘처럼 소설에도 트렌드가 있고 유행이 있어 그런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계시는 집이나 고향처럼 변하지 않으면서 푸근한 것이 있듯, 세월이 지나도 항상 변치 않는 맛을 내주는 작품도 있다.
『홍합』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