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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역대 최악의 정부에 대응하는 방법은?-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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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정부에 대응하는 방법은?
『숨통』, 최일남, 한국문학사

처음 문학잡지에 연재할 때는 『고여 있는 시간들』이었다가, 『숨통』이란 제목으로 바꿔서 단행본으로 출판했고, 뒤에 출판사를 옮겨 『시작은 아름답다』란 제목으로 다시 내었다.
개인적으로 『숨통』을 읽었고, 그 제목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4.19세대의 눈으로 5.16 이후 약 10여 년에 걸쳐 왜곡된 현대사의 진행을 그렸다.
하지만 4월혁명이나 군사쿠데타에 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군사독재정권 아래 지식인의 갈등과 변절 과정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과 권언유착, 그리고 일부 교수들(폴리페서)의 권력지향성 등이 주요 화두인 셈이다.
특히 권력의 언론통제에 대한 묘사는 집요하고 적확하다.
작가의 오랜 기자 생활 덕분이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사정권은 정통성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자신들의 통치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가혹한 언론탄압이 가해진다.
테러‧협박‧연행‧고문 등의 폭력과 회유‧매수‧지원금 등을 통한 유화책을 동시에 사용하며 언론을 굴복시켜 나간다.
소위 ‘사탕과 매’, ‘당근과 채찍’의 양면전략이다.
그 속에서 대다수 언론인들은 결국 권력에 굴복해 자포자기하거나 자학하고, 나아가 자기합리화에 빠져들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60, 70년대의 정보공작정치 하의 상황 아래 ‘숨통’이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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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마치 고여 있는 물이 속으로 썩어가는 시간, 즉 ‘고여 있는 시간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주인공 상규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널리 퍼지고 스며든 공포 분위기는 모두의 입에 재갈을 물려놓은 실정”(41p)이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냉소적으로 자조하며 체념하고 만다.

읽다보면 지금으로부터 40년도 훨씬 전의 역사적 현실들이 곧 2010년대에 들어서는 요즈음 우리 현실과 어딘지 닮아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곧 어떤 절망감에 휩싸였다가, 다시 끓어오르는 무언가에 얼굴이 상기됨을 느끼게 된다.

박정희정권이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밀리에 대일굴욕협상 한 것에 학생들이 항거하자 대학교수 한 사람이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증오만 있지 실리를 택하는 부분은 결여돼 있다”(70p)고 비판한다.
이는 이명박정부가 잘못된 쇠고기 협상을 하고도 실리니 실용이니를 강변하는 장면과 겹친다.
“장교들이 신문사에 난입해…개머리판으로 조지는 식”(55p)으로 언론탄압하는 것은 YTN, KBS 사태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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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면도 나온다.
박정희정권에 비하면 이승만과 “자유당아저씨들은 양반이었달까”(55p) 냉소하는 장면.
자유당의 독재와 폭압에 못 견뎌 뒤집어엎었는데 나중 들어선 군사독재는 더하더라는 것.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켰는데, 이게 웬걸, 요즘 여기저기서 “이명박 정부가 역대 최악”이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숨통』이 재출간 되면서 제목으로 삼았던, ‘시작은 아름답다’고 했던 그 방법을 더 연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아무(소설가)/

숨통(한국문학장편소설 1) 상세보기
최일남 지음 | 한국문학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