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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브'는...-<잘못 들어선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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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술을 얻고 미래 예지 능력을 빼앗겼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귄터 쿠네르트, 문학과지성사

귄터 쿠네르트는 구 동독 출신의 작가로 독일이 통일되기 전 사회주의의 모순을 그린 작품을 많이 썼다.
해서 동독보다는 오히려 서독에서 더 인기가 있었을 정도였다.

사회주의가 낳은 병폐들
쿠네르트는 동독의 현실 사회주의를 비롯해 모든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체제를 비판했다.
쿠네르트가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사회주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현대 산업사회의 비인간적인 구조로부터 자유를 제공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산업사회의 기술이 치명적인 문명의 도구를 생산해내고, 나아가 대중의 의사를 조직화․획일화하는 부작용까지 낳았다.
이는 극복했다고 믿었던 중앙집권적인 관료화가 여전히 존재함으로써 억압구도를 재생산하고 있었던 것.

자본주의의 파탄을 예고하다
쿠네르트는 1979년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망명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쿠네르트에게 희망의 빛을 제공해 주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올시다”다.
자본주의의 억압구도는 초국가적, 초이념적 성격을 띠며 세계화의 길을 걷다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최근 파탄이 나고 말았다.
쿠네르트는 일찍이 그것을 예견했던 작가였다.

생태계 파괴 알면서도 문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그는 현재의 국면에서 파국적인 미래를 예감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를 우리에게 불을 가져다준 기술의 수호신으로 환영하지만 그 대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반대급부로(신화가 보여주듯이) 그는 미래에 대한 예견 능력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태계의 파괴를 보면서도 기술문명의 안락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되찾자!
쿠네르트는 소리높여 외친다.
작가의 임무는 인간이 잃어버린 ‘미래에의 예견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미래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암울할수록 역사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절박함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미래사회로부터 날아온 조난신호
미래로부터 온 ‘병 통신’은 미래사회 자체가 조난당할 처지에 놓였으니
‘현재’ 상태에서 미래를 구해 달라는 것이지만 국가권력은 그 ‘병 통신’을 폐기하고 만다(단편 「병 통신」).

지구 종말 후 유일한 생존자인 두 우주비행사는 남자지만
인류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을 ‘재생산’하라는 명령을 받고
한 사람이 성 전환 수술을 받지만 생각대로 아이가 잉태되지는 않는다(단편 「아담과 이브」).

바라던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이는 정신적 결함을 가지고 있고,
그런 아이를 보면서 부모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으로 이해한다(단편 「바라던 아이」).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이 투영되고
특히 「동화적인 독백」, 「올림피아2」 등에서 등장하는 기술은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모든 사생활이 국가 권력에 의해 감시당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유’를 말할 수 없게 되고 만다.
곳곳에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종말이 예정된 ‘잘못 들어선 길에서’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가?
선택은 자유지만 조금만 더 가면 더 이상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이 ‘폭주기관차’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잘못 들어선 길에서((문지스펙트럼:외국문학선 17) 상세보기
귄터 쿠네르트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국내 처음 소개되는 귄터 쿠네르트의 대표 단편 모음집. 동독 태생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쿠네르트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 현실 사회주의의 모순을 그린 작품들로 오히려 서독에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