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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소설

달맞이꽃(연재5)내 팔꿈치 위에 걸린 그녀의 가슴은...


게다가 그녀는 브레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브레지어의 소재가 주는 제법 두터운 그런 두께가 느껴지지 않았다. 기껏 면 소재 티셔츠 한 장만이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것인데, 실제 그 느낌은 그냥 맨살에 닿은 듯한 느낌이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고 동시에 식은땀이 흘렀다. 흘깃 보았을 때 얇은 티셔츠 위로 가슴의 정점이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왜 그래?”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더 기울이며 물었다.

“아, 아니야. 가자.”

그녀를 무안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라 하더라도 그런 걸 말할 수는 없었다.

함께 걸어도 보조를 똑같이 맞추기는 어렵다. 맞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엇박자가 생기면서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너무 정확하게 보조를 맞추려고 억지를 부리다가는 오히려 더 어색해져서 민망해지게 된다. 이혼하는 부부처럼 성격차이가 너무 크게 나도 문제지만 틀에 박은 듯 같은 것도 불행이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고 내가 그 속도에 맞추려고 했지만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가슴이 팔꿈치 위를 1Cm 안팎으로 오르내렸다. 보조를 맞추며 걷던 걸음이 엇갈릴 때는 더욱 깊게 부딪쳐왔다. 그것은 나에게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을 증폭시켰는데, 희열과 고통이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강물의 흐름이 미세한 공기의 흐름을 유도하면서 기분 좋게 샤워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옆에서는 화장기 하나 없이 인공의 향기를 전혀 보태지 않은 머리카락 냄새와 따스한 살내음이 전해져왔다. 간혹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땀냄새를 더해주기도 해 가벼운 흥분을 돋워주었다. 여기에 더해 나는 계속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는 형국이었으므로 도연명의 도원이 부러울 리 없었다. 한 순간 내 팔꿈치에서 손가락이 하나둘씩 새로 돋아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는 동안 내 성기는 하릴없이 먼 데 전언만으로 점점 딱딱해지고 있었다. 이 녀석은 평소 주기로 보아 그때가 마침 그럴 시간도 되었거니와 맞춤한 자극제까지 나타났으니 호재를 만난 터였다. 하지만 그 상황은 나에게 고통이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피는 펄펄 끓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머리 속으로는 온갖 포르노 장면이 상영되고 귀로는 뒤엉킨 남녀의 교성이 환청처럼 들려오는데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담배를 빌미로 접근한 것도 그녀고, 덥석 팔짱을 낀 것도 그녀이며, 이른 아침에 커피를 마시자고 동행을 요구한 것도 그녀이기는 하지만 처음 만난 순간 거의 마지막 단계로 순간이동할 수는 없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가 성교육 한 번 받은 적 없고 돌려본 플레이보이 잡지와 포르노 비디오에만 의존한 결과였다. 도대체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심야다방에서처럼 조용히 화장실로 가 혼자 처리할 수도 없었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때처럼 아무 이유 없이 빽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진숙도 그럴 때의 행동요령에 대해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 모든 상황이 그대로 나에게 고통이 되어버렸다.

겨우 10m 가량을 걷는 동안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들었고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찾아냈다. 담배를 피워 문 것이었다. 그녀에게 붙잡힌 오른팔은 그대로 두었다. 왼손으로 담배를 꺼내 왼손으로 일회용 라이터를 켜고 왼손으로 피웠다. 일시에 고통이 사라지듯 개운했다.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담배연기에 섞어 날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후후, 너 되게 심각해 보인다.”

물고 있는 담배를 그녀가 가져가 빨았다.

“담배 줘?”

다시 담배를 나에게 내밀었다.

“아니, 됐어. 네가 피는 게 멋있어 보여서 그래봤어.”

갑자기 그녀가 참새처럼 다리 난간으로 뛰어갔다. 그리곤 흥분한 듯 강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봤어? 방금 물고기가 위로 뛰어올랐어.”

“응, 그랬어?”

그다지 흥미를 끄는 일은 아니었지만 가슴을 내맡겨준 것에 대해 보답이라도 하듯 나란히 섰다.

“배고픈가? 우리한테 뭐 먹을 거 달라고 그런 게 아닐까? 별로 줄 건 없고 이거나 먹어라.”

거의 다 탄 담배를 던져주었다. 그녀는 “야아…….” 가볍게 책망하며 내 어깨를 쳤다. 그리고 난간에 팔꿈치를 댄 채 턱을 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야. 그런 궁상맞은 이유라면 머리만 물 밖으로 삐죽 내밀고 두리번거렸겠지. 하지만 그 녀석은 힘차게 솟구쳐 올랐단 말야. 적어도 30Cm 이상은 뛰어올랐을 거야.”

그녀는 꿈을 꾸듯, 혹은 무대에 선 배우가 독백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 물 속에서 얼핏얼핏 비치는 물 밖의 하늘이며 구름, 산, 나무, 새 따위를 보았을 거야. 그리곤 이렇게 생각했겠지. 와, 저것들은 다 뭘까? 물 속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구나. 저 바깥 세상에는 누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정말 한 번 가보고 싶어. 그래서 다른 물고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감행해보는 거야. 갈매기 조나단처럼, 막내 인어공주처럼. 느껴지지 않니? 물고기의 저 활기가. 아마 금방 다시 뛰어오를 거야.”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내게 너무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가슴의 감촉에 비해서. 그녀가 다시 걷게 하는 방법으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좋을까, 무시하고 빨리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우리도 모험을 감행하러 떠나자고 하는 건 어떨까.

“우와, 또 뛰어올랐어. 봤지, 응?”

곧 그녀가 다시 팔짱을 끼었고 나는 더 이상 고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기분이 되었고 그녀는 물고기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했다.

“이 강에 몇 종류의 물고기가 사는지 아니? 아주 많아, 아니 그렇대. 자갈이나 바위 틈서리에 숨어다니는 피라미, 생명력이 강한 붕어, 숭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시가 많은 눈치, 이마가 유난히 넓고 편평한 게 히히……, 너만큼이나 못생긴 메기, 모래 속에 집을 짓고 사는 모래무지, 몸통이 납작하면서 넓고 짧은 꺽더구, 돼지고기처럼 맛있다고 해서 물 속의 돼지라고 불리는 쏘가리, 개구리를 잡아먹고 사는 가물치, 입수염이 멋있는 잉어와 진흙을 먹고 사는 숭어도 있고, 버들치, 몰개, 납자루, 망태, 빼가사리, 또 새까만 피부에 날씬하지만 가슴지느러미에 독가시를 가진 탱가리 같은 물고기도 있어. 아니아니, 있었대.”

“있었대?”

“응, 전에는 그랬었대.”

그녀는 환경보호론자라도 된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는 30, 40종이 있었는데 지금은 20종도 안 된다나봐. 대부분이 보호종인데 오염 때문에 죽고, 외래종 물고기에게 먹히는 경우도 많은가봐. 여기저기서 다 들은 얘기야.”

들은 얘기이건 순전히 지어낸 얘기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았고, 나는 그녀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은은한 달빛 속에 비춰진 듯한 그녀의 윤곽을 상상해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육체를 조금씩조금씩 점령해가기 시작했다. 나만의 느낌은 그렇게 절정을 향해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그녀도 나와 같은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물고기니 환경오염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도무지 내 팔에서 가슴을 떼어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약간은 의식적으로 가슴을 슬쩍 눌러도 그녀는 전혀 피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슴을 들이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내가 거미여인에게 붙잡힌 작고 힘없는 벌레일지도 몰랐다. 벗어나기는커녕 꼼짝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