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를 먹는 불가사리>, 정하섭, 길벗어린이
얼마 전 해리포터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해리포터에 나오는 신비한 동물 자료를 모은 책이 출판된 적이 있었다. 뭐 그런 걸 책으로 만들어 냈을까 싶었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은 그 책에 나온 상상 동물 이름을 마치 친구의 이름처럼 외고, 서로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지 알아맞히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서양의 상상 동물 이름을 줄줄 꿰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상상 동물은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가 많다. 이건 달리 탓할 데 없이 우리 어른의 잘못이다. 이무기나 불가사리를 더 낯설어 하는 아이들로 만든 것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쇠를 먹는 불가사리>를 소개해 본다.
<쇠를 먹는 불가사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상상의 동물, 불가사리를 소재로 한 그림책이다. 불가사리는 죽이는 것이 ‘불가’한 동물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동물이다.
이런 불가사리를 만든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것도 쇠붙이를 먹어치우는 왕성한 식욕을 가진 상상의 동물을. 그림책은 산골 마을 한 여인이 밥풀을 뭉쳐서 불가사리 인형을 만드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 여인은 남편과 아들을 모두 전쟁에서 잃고 쇠붙이에 진저리를 치는 인물이다. 그 여인의 바람대로 밥풀떼기 인형은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조리 먹어 치운다.
밥풀떼기 인형이었던 불가사리는 쇠붙이를 먹으면서 몸이 단단해진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쇠붙이를 먹는 양도 늘어나고 점차 몸집도 커진다. 작가는 과장과 점층의 방법을 잘 살려 쓰고 있다. 처음엔 쥐만했다가, 다음엔 개만했다가, 그 다음엔 소만했다가 나중에는 집채만해졌다는 것이다. 또 안방에 있는 쇠붙이, 집안에 있는 쇠붙이, 마당에 있는 쇠붙이, 온 마을에 있는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조리 먹어치운다고 한다. 이런 점층과 과장은 그림책의 글이 갖추어야할 운율감을 잘 살리고 있다.
글 작가는 불가사리의 내력을 ‘뻥튀기’ 한 다음 불가사리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급기야 불가사리는 전쟁터에 나가 모든 쇠붙이를 먹어치워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러나 불가사리의 명성에 시샘을 한 임금이 아주머니를 잡아 인질로 삼자 불가사리는 아주머니를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자신의 몸이 녹는 줄도 모르고 아주머니를 구하는 불가사리의 의리.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올 만한 대목이다. 실제 북한에는 신상옥 감독이 만든 <불가사리>라는 영화가 있다.
아주머니를 구한 불가사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어느 깊은 산골 한 아주머니가 밥풀을 뭉쳐 불가사리를 만드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억눌린 자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있기 때문이다. 불가사리가 우리나라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한다.
/한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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