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학교 1-5』, 김진경, 문학동네
고양이는 무섭다. 노란 구슬 같은 광채를 띤 눈빛, 날카로운 발톱, 가르릉 거리는 소리. 고양이와는 절대 친해질 수 없는 거부감이 든다. 게다가 어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의 이미지까지 합세하여 고양이 하면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나 무서움과 함께 신비로움을 느낀다. 감히 근접치 못할 도도함과 또다른 영적 세계를 지니고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고양이의 이미지를 잘 활용한 김진경의 『고양이 학교』는 전세계 고양이들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 15살이 되면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정을 떼고 ‘고양이 학교’로 향한다. 민준이가 길렀던 버들이는 15살이 되면서 고양이 학교로 가게 된다. 이 고양이 세계에도 빛의 세계와 어둠이 세계가 대립하고 있다. 수정 고양이는 인간과 이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세력이며, 그림자 고양이는 이 세계를 파멸로 몰아가는 인간 세상을 응징하고자 한다.
수정 고양이 가운데 태양의 고양이와 대지의 고양이가 이 세계를 구원하는 중심인물이며, 노르웨이산 바이킹, 미얀마산 고양이 등등 여러 고양이들이 신화적 요소와 결합하여 악의 무리와 맞선다. 그런데 이 책에서 눈여겨 볼 점은 작가가 선악의 대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이다. 옛이야기의 전형적 인물들은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이 정해져 있고 결국 악한 인물이 응징을 당한다. 물론 『고양이 학교』에서도 수정 고양이에 의해 그림자 고양이가 응징 당한다. 그러나 그림자 고양이는 바로 수정 고양이와 쌍둥이들이다. 선과 악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한 핏줄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인드라의 구슬처럼 모두 꿰어져 있어 한 구슬이 끊어져 깨지게 되면 다른 구슬도 깨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잘못에 의해 사라져간 생물들처럼 인간도 그렇게 사라진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연과 인간, 선과 악, 죽음과 생명 등의 모든 이치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이런 가치가 너무 개입되어 환경문제나 교훈적인 설교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김진경의 『고양이 학교』는 우리나라 판타지 문학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린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신화와 현실의 만남 또한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현실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신화적 요소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교훈성과 목적성에 매이지 않고 판타지 세계에 흠뻑 빠져 즐겁게 놀 수 있어야 한다. 판타지 세계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현실을 살아갈 든든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한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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