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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역사 속 깡패와 기생, 술꾼들을 불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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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푸른역사

나는 뒷골목이 좋다. 학교 다닐 땐 뒷자리가 좋았고, 사람 많은 유명 관광지보다 표지판도 없는 곳이 마음 편하고, 서점에 가도 베스트셀러 코너보다 먼지를 뒤집어 쓴 서가 쪽에서 서성거린다.

연애할 때도 뒤쪽으로, 어두운 데로만 다녔다. 대학 땐 남들 다하는 동아리 놔두고 속칭 ‘언더’, 즉 지하서클 활동하고 '데모'하다가 학교 잘려서 군대 끌려가기도 했다.

큰길 놔두고 뒷길로만 다니니 인생이 평탄할 리 없다. 고달프다. 하지만 나는 이게 재밌다. 남들 다 보는 데서 연애한다 생각해보라. 재미있겠는가?

남들 다니는 관광 코스만 다니고, 남들 다 보는 책만 읽고, 무난히 대학 졸업해서 아주 평범하게 먹고 사는 것, 내가 보기엔 시시하다. 매력 없다.

내 기억에, 학교 다니면서 국사 과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왕들의 이런저런 업적이 고리타분했고, 나라간 땅따먹기가 유치했고,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만 묻는 역사 시험이 치졸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역사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생겼다. 홍명희의 <임꺽정>과 황석영의 <장길산>이었다. 거기에선 왕과 날고긴다는 장수가 단역이나 조연이었고, 역사책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물들이 주인공이었다.

건강함과 생명력이 있었다. 물론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가의 개입이 있었지만, 그들의 존재 이전에 어찌 작가의 개입이 있었으랴.

그 후, 그러구러 사 모은 역사책이 2, 3백여 권 정도 된다. 그 중에서 학술적인 것도 있지만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다. 여기엔 조선의 뒷골목을 누빈 이름 모를 민초들의 생기발랄한 삶이 있고 생활이 있다.

지은이는 가장 먼저 이렇게 반문한다. “조선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그에 의하면 우리가 학교에서 마르고 닳도록 들어온 이야기가 많은 부분 택도 없는 소리란 거다.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되는 민중들, 투전 노름에 날새는 줄 몰랐던 전문 도박꾼과 사기도박단, 술 권하는 사회가 되면서 벌어진 과잉단속과 함정단속의 풍경, 과거 시험장에 진을 치고 있는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비밀 폭력조직 검계, 온갖 유행을 주도한 조선의 오렌지족, 양반들의 공공연한 기생 쟁탈전, 아버지의 첩과 관계한 아들 등 희대의 성 스캔들까지.

요즘 신문 사회면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 없을 것 같은 장면들이다.

역사는 왕이나 양반처럼 아주 고귀하거나 홍경래나 임꺽정처럼 큰 사고를 친 사람이 아니면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고 시시한 것들이 과거 인간들의 리얼리티, 나아가 역사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거대한 역사에 가려진 또 다른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을 학생들이 읽었으면 한다. 깡패와 기생, 도박과 술집 따위에 대해 알아가는 동안 흥미를 느끼고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를 바란다. 왕의 치적이나 민족의 우월성만 달달 왼다고 우리 민족이 더 우월해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멀리 떠나보낸 우리 역사를 우리 옆에 앉혀줄 수 있는 책이다.

하아무(소설가)

조선의 뒷골목 풍경 상세보기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펴냄
조선의 옛 풍경을 상상해보자. 먼저 떠오르는 것이 뭘까? 추상적으로 커다란 궁궐과 왕족들의 우아한 풍채만을 떠올린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흥계 호령한 무뢰배들, 투전 노름에 골몰한 도박꾼,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들, 반양반의 기치를 높이 든 비밀 폭력조직... 옛 조선의 뒷골목을 채웠던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역사이다. 이 책은 잊혀진 그들의 생기발랄한 삶의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