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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아직도 경제 타령, "그 거짓된 희망을 거부하라"

부패와 무능은 그들 본연의 자질...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 마빈 해리스,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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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산 입'이다. 이식위천(以食爲天),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지 않았던가. 거미줄을 치지 않으려면 열심히 벌어야 한다. 그래서 거미줄을 없애주겠다는 사람을 뽑았다. 헌데 당선되고 나니까 웬걸, 여의치가 않은 모양이다. 기름 값도 내리기 어렵고 휴대전화 요금도 그렇고, 경제성장률도 애초보다 낮춰 잡는단다. 오히려 물가는 대폭 오르고 있다.

자기 입으로 약속했던 것 중에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애초부터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걸 알면서 허풍을 쳤거나 그렇지 않으면 뭘 몰랐던 거다. 아니 둘 다일 수도 있겠다.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미국 경제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에다가 곤두박질치는 경제상황은 우리에게도 큰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 '경제 쓰나미'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장밋빛 약속을 제시한 배포가 대단(?)하고, 그 약속을 믿고 찍어준 무지도 아주 대단(?)하다.

미국 경제에 대한 경고 혹은 비관적 전망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일찍이 미국 경제를 들어 상징적으로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1980년대 미국은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 사회인데, 그 구체적 정황들을 보면 흡사 오늘날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는 근본 원인으로 2차 대전 이후의 과점 기업과 관료 체제의 부상을 든다. 이로 말미암아 제조업의 퇴조와 서비스 정보 산업의 부상,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 하락, 달러화의 위축, 여성의 사회 진출, 게이들의 등장, 거리 테러의 급증, 컬트의 범람, 신비주의와 정신세계 또는 종교에의 탐닉 등의 문제로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런 요소들이 결국 미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입들을 위한 경제, 돈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음으로 해서 그것이 일정 부분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더 심화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산업화와 도시화-출산율 저하-실업률 증가-범죄율 증가-컬트적 문화 범람 등. 수많은 현상을 낳아 이제는 돌이키기조차 어려워지지 않았나 하는 절망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민간과 정부 부문 모두에서 관료주의가 극성을 부린다. 도덕적 가치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부패와 무능이 그들 본연의 자질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언론마저 기업의 자본에 좌우되며, 국민은 저급한 문화 생산자에 눈이 가려졌다. 뉴스나 신문을 보는 게 지겹고 피곤하다. 정말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이런 우리에게 마빈 해리스는 말한다. "이런 때일수록 거짓된 희망을 거부하고 냉엄한 비판과 분석에 나서라"고. "힘들겠지만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희망의 작은 불빛이 비칠 것"이라고.

/하아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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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해리스 지음 | 황금가지 펴냄
오늘날 우리가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낯설고 새로운 현상을 들려주는 인류학자의 저서. 컬트와 포르노 휴게실, 노상에서 키스하는 남자들, 연령이 늦어지는 결혼, 낙서로 뒤덮힌 건물 등의 현상과 원인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