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생태적 이상향
초등학교 때 영화 <사라진 지평선>을 보았다. 그리고 샹그리라를 동경했다. 항상 봄이고, 항상 맑고, 항상 꽃이 피어 있고, 손만 뻗으면 먹을 게 있고, 여자들이 모두 천사 같은 마음씨의 미인인 나라 샹그리라!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지은 별장 이름을 ‘샹그리라’라고 했다던가(지금의 캠프데이비드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룻밤 자고 아주아주 비싼 대가를 치른...). 중국도 중띠엔(中甸)이란 소도시의 명칭을 ‘샹그리라’로 바꾸고 대대적으로 관광지화하고 있다.
‘에코토피아’도 그런 이상향의 하나다. 하지만 샹그리라와는 다른 ‘생태적 이상향’이다. 에콜러지(ecology)와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해 만든 이 가상의 나라는 환경보호론자들의 이상향이 되었다. 이미 1990년부터 유럽에서는 해마다 에코토피아 행사를 열어 핵발전 반대운동과 유전자 조작식품 반대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그들과는 별개로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8월부터 ‘에코토피아 2000’ 행사와 캠프가 열리고 있다.
원제 <에코토피아 리포트(ecotopia report)>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에코토피아에 대한 보고서 혹은 기사 형식으로 되어 있다.
미래의 어느 시점, 과격한 생태주의자들이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미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성과 인종, 빈부, 연령에 차별을 두지 않은 평등한 세상, 특히 환경을 보전하며 생태적 균형을 이룬 나라를 만든다.
주인공은 미국과의 국교가 완전히 끊긴 후 20년 만에 최초로 에코토피아 취재를 허락받고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기사 형식으로 소개한다. 우스꽝스럽고 ‘촌빨(!)’날리는 옷, 여성이 지배하는 정부, 스포츠대신 인간의 폭력충동을 해소하기 위한 전쟁놀이,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를 가르치는 학교 등.
사실 <사라진 지평선>을 보았을 때와 같은 재미는 없다. 처음부터 에코토피아의 크고 작은 일들, 사물, 생활습관 따위를 일일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는 긴장감 있는 사건이 아니라 약간 불편하지만 생태계 보호에는 그만인 에코토피아의 식량문제, 하수처리, 교통, 경제, 인구문제 등을 세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생태적 이상향에 반한 주인공이 에코토피아에 남느냐, 돌아가느냐로 고민하는 모습도 식상해 보인다.(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한 고민임에는 분명하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상황에 처해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1891년 독창적 사회주의자이자 혁명적 유토피아론자로 불린 윌리엄 모리스가 소설 <에코토피아 뉴스>를 통해 각종 사회제도적 이상향을 그리고, 1936년에 나온 <사라진 지평선>의 샹그리라가 그 시절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향의 최대치였다면, 1975년 발표된 <에코토피아>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라의 모델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즈음에 이상향을 그리는 소설이 나온다면, 21세기에 그려질 새로운 이상향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기대된다. 에코토피아보다 진일보한 이상향, 게다가 우주시대, 그리고 첨단 과학시대가 어우러진 이상향을 그릴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사실 한 가지. 지구상 최대 환경 파괴국 미국에서 이 소설이 나왔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미국처럼 아이러니하고 불가사의하고, 또한 요령부득인 나라가 또 있을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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