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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블로그는 우리 사회와 국민을 지켜낼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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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디지털 시대의 부모이자 연인, 친구
≪스크린 위의 삶≫, 셰리 터클, 민음사

원제인 ≪Life on the Screen≫을 직역한 제목이지만 영화를 나타내는 ‘스크린’은 아니다. ‘인터넷과 컴퓨터 시대의 인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인터넷을 통한 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도 인간과 문화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제국을 구성하는 핵심이 정보와 오락, 서비스 등 비물질적 노동”이라고 했다든가. 인터넷의 절대적인 힘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인의 상당수는 컴퓨터와 지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극단적으로 말해, 컴퓨터는 디지털 시대의 부모이자 연인이자 친구로서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네트워크 접속이 안 되면 마치 큰 사고가 난 것처럼 당황하고, 회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셰리 터클이, 현대 사회의 디지털 라이프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신분석학이 적절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매우 유효하고 또 유용해 보인다.

터클은 자끄 라캉의 유명한 ‘거울 단계’를 끌어들인다. 거울 단계 이전에 유아들은 자신의 신체를 통일된 전체가 아닌 흩어진 어떤 것으로 경험한다. 이런 ‘조각난 신체’의 경험은 차츰 실제의 나와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오가는 거울의 변증법으로 극복되어, 결국 자기 신체의 통일성을 얻게 된다는 것.

터클은 라캉으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인터넷 세대는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주체의 동일성이 획득되는 과정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기계와 인간의 구분이 모호한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수없이 파편화된 자아의 조각들은 발견한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땜질’, ’브리콜라쥬’의 과정을 거쳐 자아로 통합된다. 디지털 시대에 또 하나의 자아 형성 수단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많은 부모들, 나아가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성을 중요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터클은 인터넷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 시뮬레이션 세계로부터 혼돈을 겪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비롯한 사회와 현실을 비추는 모델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관련해 성폭력뿐 아니라 현실 도피, 중독, 감시 등의 문제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피가 아니라 저항일 수 있고 중독이 아니라 인터넷이 바로 새로운 삶의 주무대가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장자가 그랬다지 않은가. 쓸데없어 보이는 바가지도 생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손 안 트게 하는 약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제 손만 안 트게 해서 기껏 빨래하는 데만 쓰고, 어떤 사람은 그걸 이용해 한겨울 병사들의 손을 트지 않게 하고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 되기도 한다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인해 생기는 폐해가 있겠지만, 다르게 보면 인간의 시각적 능력을 확대해주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실현시키고 사람간의 경험을 공유시키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창조력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PS(덧붙이는 글)-이제 블로그와 아고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의 현장'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살아가고 의견을 개진하며, 나아가 이 광장을 발판으로 우리 사회를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정국의 가장 큰 주역 가운데 하나가 블로그와 아고라임을 부정하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지 않은가.

하아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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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터클 지음 | 민음사 펴냄
가상 공간에서의 성과 결혼, 컴퓨터 심리치료 등 컴퓨터로 매개되는 세상에서 자아는 다중적이고 유동적이다.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는 과학자들의 연구로부터 아바타를 통해 끊임없이 모핑을 시도하는 아이들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이제 우리의 문화는 실재와 가상, 일관된 자아와 다중적 자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머드 게임과 채팅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 주면서, 저자는 나와 컴퓨터 속의